정백형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시강원필선, 예조정랑, 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덕후(德後)
시호
충경(忠景)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90년(선조 23)
사망 연도
1637년(인조 15)
본관
진주(晉州)
주요 관직
장령
관련 사건
정묘호란|병자호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시강원필선, 예조정랑, 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덕후(德後). 조선 초 명신 척(陟)의 후손이며, 정매신(鄭梅臣)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참봉 정원린(鄭元獜)이고, 아버지는 공청도관찰사 정효성(鄭孝成)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로 신천군수(信川郡守) 홍의필(洪義弼)의 딸이다. 경기감사 정백창(鄭百昌)의 아우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23년(인조 1) 박사제자(博士弟子)에 뽑혀 연원도찰방(連源道察訪)이 되고, 이듬해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저작·예문관검열을 거쳐 대교·봉교를 지냈다. 1627년 정묘호란 때 임금을 따라 강화도에까지 갔던 공로로 사헌부감찰이 되었다.

정언·지평·통진현감·시강원필선을 지냈으나, 1632년 정원군 부(定遠君琈)에 대한 원종(元宗) 추존 논의가 일어나자 이를 반대하다 면직되었다. 1634년 예조정랑·장령을 지내고, 1636년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 들어갔다가 이듬해 성이 함락되자 아버지 정효성과 함께 자결하였다.

이듬해 정문이 세워지고, 현종 때 도승지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경(忠景)이다.

참고문헌

『인조실록(仁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기언(記言)』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