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헌서(軒瑞). 아버지는 병조좌랑 정숙주(鄭叔周)이다.
처음에는 유학을 공부하여 큰 뜻을 펴려 하였으나 그의 형 정상룡(鄭祥龍)이 항소(抗疏)하여 유현(儒賢)의 무(誣)를 받아 북변(北邊)에 찬배(竄配)되었다.
이에 그는 붓을 던져버리고 궁마(弓馬)를 익혀 무과에 급제하였다. 관료생활 30년에 내직으로는 비변사낭청·도총부도사를 역임한 뒤 훈련원부정·금군장·사복내승(司僕內乘)·총융청초관(摠戎廳哨官)·금위영천총·훈련도감천총·금위영별장·어영청별장·훈련도감별장 등을 역임하였다.
외직으로는 전라병마우후(全羅兵馬虞候)·해미현감과 장흥·평산·춘천·회령의 부사와 전라우수사·경상우병사 등을 역임하고 가선(嘉善)으로 승계하여 회령의 임소(任所)에서 죽었다.
몸가짐은 유사(儒士)와 같이하여 조의(朝議)에서 심히 중히 여겼으며, 여러 차례의 청선(淸選)으로 주진(州鎭)에 나가서 그 치적이 컸으며, 특히 변방방위에 그 능력이 인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