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승지, 대사간, 예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백야(白也), 호는 악남(岳南). 정원희(鄭元禧)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흠(鄭欽)이고, 아버지는 정효준(鄭孝俊)이며, 어머니는 이진경(李眞卿)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49년(인조 27) 별시(別試)에 병과(丙科)로 급제, 학정(學正)·정언을 거쳐 지평이 되어 1654년(효종 5)에 인조의 총희 조숙원(趙淑媛) 문제를 논하다가 영산(靈山)에 유배되었다. 2년 뒤 복관되어 정언·지평·장령 등을 역임하였고, 1662년(현종 3)에 장악원첨정(掌樂院僉正)으로 문신정시(文臣庭試)에 3등으로 합격하였다.
그 뒤 수찬·교리·집의·응교를 거쳐 1669년에 동래부사가 되어 왜관(倭館)을 동래부로 옮기기도 하였으나 왜인을 잘 규리(糾理)하지 못하였다 하여 파면되었다. 그 뒤 승지·대사간을 거쳐 예조참판이 되었다.
1679년(숙종 2)에 『명사(明史)』 가운데 잘못 기술된 인조반정 기사를 바로잡기 위하여 변무부사(辨誣副使)가 되어 청나라에 파견되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악남집』 1책이 있다.
참고문헌
- 『효종실록(孝宗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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