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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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동양맥주 사장, 두산그룹 회장,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이사장 등을 역임한 경영인.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영덕(盈德)
  • 사망 연도1999년 10월 24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919년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유광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경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해방 이후 동양맥주 사장, 두산그룹 회장,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이사장 등을 역임한 경영인.

개설

본관은 영덕(盈德). 아버지는 정원석이고, 어머니는 김분남이다. 부인 권태순과의 사이에 1남4녀를 두었다. 대구고보(현 경북중고)와 경성고상(현 서울대 상대)을 졸업하였다.

생애와 활동사항

광복 전 3년간 만주 흥업은행에서 근무하다가 광복되던 해 동양맥주에 입사하면서 두산과 인연을 맺어 상무, 전무를 역임하였다.

1965년에 새한제지 전무로 있었으며, 또 1967년 한비(韓肥) 전무로 근무하다가, 1968년 삼성물산 사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간의 기업경영의 경력을 바탕으로 1969년 동양맥주 사장에 올라 국내 전문경영인 사장 1호를 기록하면서 1977년까지 사장으로 있었다.

1975년에 기업의 명칭이 두산농산으로 바뀌고, 1977년 두산그룹으로 다시 개칭되면서 회장으로 1981년까지 일했다. 그리고 1980년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선임되어 1988년까지 재직하였다. 1980년에 입법회의 의원이 되었고, 또한 1980년부터 1999년 10월까지 환경보전협회 회장과 명예회장을 역임했다.

1981년에 다시 동양맥주회장이 되었고, 같은 해 학계와 인연을 맺기 시작해, 그 해 국제경제연구원(현 산업연구원) 이사장이 되고, 또한 같은 해부터 1987년까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학문발전을 위해 기여하기도 하였다.

한편, 1990년에는 정계에도 관심을 가지고서 민자당후원회 회장직을 수행했다. 1991년부터 1993년까지 다시 두산그룹 회장으로 일하였으며, 1992년에 보람은행이사회 회장으로도 겸직하면서, 금융계의 일에도 관여하였다.

한국의 경제, 사회발전을 위해 분주히 힘써 일하면서 개인적으로 사회기여를 위해 1994년부터 1999년 10월 24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연강재단을 세워 이사로 있었다.

또한 1998년 9월부터 1999년 10월까지 전경련 자문단의 일원으로 일했다. 그리고 그간 한국산업과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은탑 및 금탑 산업훈장을 받았고, 그 외 우수경영자상과 골드머큐리 개인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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