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간성군수, 시강원진선, 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시호문절(文節), 정절(貞節)
  • 부익자(孚翼子), 포옹(抱翁)
  • 안숙(晏淑)
인물/전통 인물
  • 본관연일(延日)
  • 사망 연도1668년(현종 9)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장령
  • 출생 연도1600년(선조 33)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장동익 (경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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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간성군수, 시강원진선, 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안숙(晏叔), 호는 부익자(孚翼子)·포옹(抱翁). 할아버지는 정철(鄭澈)이고, 아버지는 강릉부사 정종명(鄭宗溟)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로 참의 홍인걸(洪仁傑)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18년(광해군 10)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로 피신하였으나 성이 함락되자 자살하려다가 미수에 그쳤다. 병자호란 후 수년간 은거생활을 하다가 동몽교관에 제수된 뒤 의금부도사·광흥창주부(廣興倉主簿)·수운판관을 역임하였다.

1650년(효종 1) 용안현감으로 나가 치적(治蹟)을 올렸으며, 이 후 비안현감·종부시주부·진천현감·금구현령·한성서윤((漢城庶尹) 등을 역임하였다. 1661년 지평으로 발탁되었으나 교리 민유중(閔維重)으로부터 한성서윤 때의 일로 조사를 받고 있다는 탄핵을 받아서 교체되었다.

이 후 간성군수·시강원진선을 거쳐 1668년 장령에 이르렀으며, 이 해에 죽었다. 『어록해(語錄解)』를 중수, 간행하였다. 초시(初諡)는 정절(貞節)이었으나 뒤에 문절(文節)로 개시되었다.

참고문헌

  • - 『현종실록(顯宗實錄)』

  • - 『명재유고(明齋遺稿)』

  • - 『송자대전(宋子大全)』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전고대방(典故大方)』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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