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영덕(盈德). 자는 방언(邦彦), 호는 관원(灌園). 정계전(鄭繼全)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윤인(鄭允仁)이고, 아버지는 정홍(鄭鴻)이다.
1594년(선조 27)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1599년에 병조좌랑에 임명되자 채겸길(蔡謙吉)과 함께 홍여순(洪汝諄)의 사주에 의하여 유성룡(柳成龍)을 비방, 배척하였다. 이 때 그는 간사한 언론으로 사람을 현혹시키고 사특한 행동을 일삼다가 좌의정 이원익(李元翼)의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그 뒤 세자시강원사서·장령을 거쳐 해주판관·보령현감·대구판관·평안도도사·은계찰방(銀溪察訪) 등 외직에 전전하였지만, 그 조처가 모두 어리석고 교활하였다고 한다. 1608년(광해군 즉위년)에 통례원좌통례(通禮院左通禮)로서 춘추관편수관을 겸직하여 『선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광해군 때에는 행신(幸臣) 이이첨(李爾瞻)의 일당으로 활동하였고, 해주목사가 되어서는 최기(崔沂)를 무고하여 옥사를 일으키는 등 비행을 자행하다가 인조반정 후 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