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분권 1책. 석인본. 16대손 문현(文鉉) 등이 편집한 것을 1967년에 간행하였다. 권두에 김황(金榥)의 서문이, 권말에 15대손 적(逷)과 16대손 건현(建鉉)의 발문 및 문현의 후지(後識)가 있다. 경상북도 영천군 대창면의 후손 용근(龍根)이 소장하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사우당 종택에도 있다.
이 책은 서두의 자작시 「영회(詠懷)」·「증학자(贈學子)」 2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부록으로 되어 있다. 부록의 내용은 저자가 등과한 「성종이십사년갑인사월별시방목(成宗二十四年甲寅四月別試榜目)」, 실록에서 그의 관력(官歷)을 발췌한 「국사실록(國史實錄)」, 『취원당집(聚遠堂集)』에서 발췌한 「척유(摭遺)」, 저자가 종증조인 상치(尙治)의 「자규사(子規詞)」에 가한 평, 제향 관계 사실 등이다.
「송청청백사청향상서(松靑淸白祠請享上書)」·「예조회계(禮曹回啓)」·「청백사개기고유문(淸白祠開基告由文)」·「청백사상량문(淸白祠上樑文)」·「청백사봉안문(淸白祠奉安文)」 등은 그의 제향에 직접 관련된 글들이다.
1790년 (정조 14)에 10대손 학구(鶴九) 등이 청백사를 짓고 사향(私享)할 것을 상청(上請)해 예조의 허락을 받기까지의 내력과 청백사가 1791년에 저자의 증손 광익(光益)을 합사(合祀)하여 청효사(淸孝祠)가 되고, 다시 1796년 오봉서원(五峯書院)으로 승격되기까지의 일들이 적혀 있다.
1795년 지방 사림들의 공향(公享) 의사에 대한 성균관 유생들의 답통(答通)인 「반유통문( 伴儒通文)」과, 「청효사병향봉안문(淸孝祠並享奉安文)」·「오봉서원중수상량문(五峯書院重修上樑文)」 등도 이에 관련된 글이다.
그 밖에 증손 광익이 찬한 행록, 8대손 선장(善長)이 쓴 유사, 이휘령(李彙寧)이 찬한 묘갈명은 저자의 생애를 재구성하고 덕행을 기린 내용이다.
「옥비각기(玉碑閣記)」는 중종이 내린 옥비를 1851년(철종 2)에 영양(永陽) 사림들이 오봉서원으로 비각을 지어 옮기고, 새 돌에다 비문을 다시 쓴 내력에 관한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