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경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에, 지형부사, 형부상서, 검교밀직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시호
염의(廉義)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305년(충렬왕 31)
사망 연도
1366년(공민왕 15)
본관
봉화(奉化)
주요 관직
상주목 사록|밀성군지사(密城郡知事)|전주목사|병부시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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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후기에, 지형부사, 형부상서, 검교밀직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봉화(奉化). 봉화현 호장 정공미(鄭公美)의 증손이다.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 정균(鄭均)의 아들이며, 조선 개국공신인 정도전(鄭道傳)의 아버지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이모집에서 자랐다. 어려서 영주(榮州)와 복주(福州: 안동)의 향교에서 수학한 뒤 개경에 올라와 십이도(十二徒)와 교유하며 이곡(李穀) 등과 사귀었다. 1326년(충숙왕 13)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어 1330년 문과에 급제해 이듬해 상주목 사록으로 나갔다.

이후 전교교감(典校校勘)·주부(注簿)·도평의녹사(都評議錄事)·삼사도사(三司都事)·통례문지후(通禮門祗候)·전의주부(典儀注簿)·홍복도감(弘福都監)의 판관을 거쳐 1343년(충혜왕 복위 4)에 밀성군지사(密城郡知事)가 되었다.

당시 재상 조영휘(趙永暉)가 밀성인에게 대여했던 포(布)의 징수를 종용했으나 이를 묵살하였다. 다음 해 복주목의 판관에 전임되어서도 정실에 기울지 않으며 송사(訟事)를 잘 처리하였다.

삼사판관을 거쳐 서운부정(書雲副正)이 되어 1346년 하정사(賀正使)의 서장관으로 연경(燕京)에 다녀왔다. 그 뒤 성균사예·보문각지제교(寶文閣知製敎)를 지냈다. 1348년(충목왕 4) 양광도안렴사(楊廣道按廉使), 이듬해 교주도안렴사(交州道按廉使) 등을 거쳐 1352년(충정왕 3) 전법총랑(典法摠郎)에 이르렀다.

1353년 전교시판사(典校寺判事)로 전주목사로 나가 치적을 쌓았다. 1356년(공민왕 5) 병부시랑에 올라 무반의 전선(銓選: 인사행정)을 관장하였다. 1357년 비서감보문각직학사(秘書監寶文閣直學士)로 옮겨 강릉도(江陵道)와 삭방도(朔方道)의 존무사(存撫使)로 파견되어 백성을 안찰하였다.

1358년 지형부사(知刑部事), 1359년 형부상서에 특별히 제수되었다. 1363년 검교밀직제학(檢校密直提學)에 제수되었다. 1365년 병이 들어 사퇴하고 영주에 돌아와 이듬해 별세하였다. 사시(私諡)는 염의(廉義)이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삼봉집(三峰集)』
『동문선(東文選)』
『정도전사상의 연구』(한영우, 한국문화연구소,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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