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봉화(奉化). 봉화현 호장 정공미(鄭公美)의 증손이다.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 정균(鄭均)의 아들이며, 조선 개국공신인 정도전(鄭道傳)의 아버지이다.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이모집에서 자랐다. 어려서 영주(榮州)와 복주(福州: 안동)의 향교에서 수학한 뒤 개경에 올라와 십이도(十二徒)와 교유하며 이곡(李穀) 등과 사귀었다. 1326년(충숙왕 13)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어 1330년 문과에 급제해 이듬해 상주목 사록으로 나갔다.
이후 전교교감(典校校勘)·주부(注簿)·도평의녹사(都評議錄事)·삼사도사(三司都事)·통례문지후(通禮門祗候)·전의주부(典儀注簿)·홍복도감(弘福都監)의 판관을 거쳐 1343년(충혜왕 복위 4)에 밀성군지사(密城郡知事)가 되었다.
당시 재상 조영휘(趙永暉)가 밀성인에게 대여했던 포(布)의 징수를 종용했으나 이를 묵살하였다. 다음 해 복주목의 판관에 전임되어서도 정실에 기울지 않으며 송사(訟事)를 잘 처리하였다.
삼사판관을 거쳐 서운부정(書雲副正)이 되어 1346년 하정사(賀正使)의 서장관으로 연경(燕京)에 다녀왔다. 그 뒤 성균사예·보문각지제교(寶文閣知製敎)를 지냈다. 1348년(충목왕 4) 양광도안렴사(楊廣道按廉使), 이듬해 교주도안렴사(交州道按廉使) 등을 거쳐 1352년(충정왕 3) 전법총랑(典法摠郎)에 이르렀다.
1353년 전교시판사(典校寺判事)로 전주목사로 나가 치적을 쌓았다. 1356년(공민왕 5) 병부시랑에 올라 무반의 전선(銓選: 인사행정)을 관장하였다. 1357년 비서감보문각직학사(秘書監寶文閣直學士)로 옮겨 강릉도(江陵道)와 삭방도(朔方道)의 존무사(存撫使)로 파견되어 백성을 안찰하였다.
1358년 지형부사(知刑部事), 1359년 형부상서에 특별히 제수되었다. 1363년 검교밀직제학(檢校密直提學)에 제수되었다. 1365년 병이 들어 사퇴하고 영주에 돌아와 이듬해 별세하였다. 사시(私諡)는 염의(廉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