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육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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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18품계 중 제11등급의 품계. 조선 건국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 문산계(文散階) · 무산계(武散階)를 제정할 때, 정6품 문산계 상계는 승의랑, 하계는 승훈랑으로, 무산계 상계는 돈용교위(敦勇校尉) · 진용교위(進勇校尉)로 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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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18품계 중 제11등급의 품계. 조선 건국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 문산계(文散階) · 무산계(武散階)를 제정할 때, 정6품 문산계 상계는 승의랑, 하계는 승훈랑으로, 무산계 상계는 돈용교위(敦勇校尉) · 진용교위(進勇校尉)로 정하였다.
내용

1443년(세종 25)에는 종친계 정6품의 상계와 하계를 집순랑·종순랑으로 신설하였다. 1457년(세조 3)에는 토관계의 정6품 문계는 선직랑, 무계는 건신대위(建信隊尉)로 신설하였다.

한편, 1444년에 잡직계는 서반잡직계만 설치했는데, 그 명칭은 수임교위(修任校尉)·수직교위(修職校尉)였다.

그 뒤 ≪경국대전≫에는 잡직계의 문계는 상·하계가 공직랑·여직랑으로, 무계는 상·하계가 봉임교위(奉任校尉)·수임교위(修任校尉)로 정비되어 수록되었다. 그런데 1865년(고종 2)부터 종친계는 문산계의 정6품 품계명을 사용하였다.

한편, 정6품 문무관 처의 직명은 의인(宜人), 정6품 종친 처의 직명은 순인(順人)이라 하였다. 그런데 1865년부터 대군과 왕자의 처를 제외하고는 종친의 처도 문무관 처의 직명례에 따라 의인이라고 불렀다.

정6품에 해당하는 관직으로는 좌랑·감찰·사평(司評)·정언·검토관·수찬·전적·기사관·교검·별제·사서·익찬·사회(司誨)·사과·종사관·평사 등이 있다.

정6품관에게는 1438년(세종 20)에 정비된 녹과(祿科)에 의거하여 실직(實職)에 따라 1년에 네 차례에 걸쳐 모두 중미(中米) 5석, 조미(糙米) 18석, 전미(田米) 2석, 황두(黃豆) 9석, 소맥 4석, 주(紬) 1필, 정포(正布) 10필, 저화 4장을 녹봉을 지급하였다. 아울러 직전 30결도 지급하였다.

그러나 1556년(명종 11) 직전법이 완전히 폐지되자, 조선 후기 ≪속대전≫에는 매달 미 1석1두, 황두 10두를 녹봉으로 지급하도록 규정하였다.

한편, 1894년 7월 갑오경장으로 관제개혁이 이루어질 때 정6품·종6품은 6품으로 개칭되고, 품계도 승훈랑으로 단일화되었다. 또한 6품에서 3품까지를 주임관이라고 하였다. 6품 주사에게는 30원의 월봉이 지급되었다.

참고문헌

『태조실록(太祖實錄)』
『세종실록(世宗實錄)』
『세조실록(世祖實錄)』
『고종실록(高宗實錄)』
『경국대전(經國大典)』
『속대전(續大典)』
『대전회통(大典會通)』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조선초기 양반연구』(이성무, 일조각, 1988)
「朝鮮初期の文武散階」(李成茂, 『朝鮮學報』 102,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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