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농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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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농악 / 유지화
정읍농악 / 유지화
국악
작품
국가유산
호남 우도농악의 한 지류로서 정읍 지역에 전승하는 농악.
시도무형유산
지정 명칭
정읍농악(井邑農樂)
분류
무형유산
지정기관
전북특별자치도
종목
전북특별자치도 시도무형유산(1996년 03월 29일 지정)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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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호남 우도농악의 한 지류로서 정읍 지역에 전승하는 농악.
내용

호남 우도농악의 한 지류로서 정읍 지역에 전승하는 농악.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정읍지역은 예로부터 세습무들의 굿 예술이 번창해 있어, 두레농악의 예술 수준을 높이는데 기여해 왔다.

더욱이 1920년대에 이 지역의 민중종교인 보천교가 농악을 종교음악으로 채택함에 따라 빼어난 농악수들이 모여 들었고, 정읍농악의 예술적 차원을 상승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보유자로 인정된 유지화(兪枝和)는 15세 시에 우도농악의 박남식(상쇠)과 이명식(장고)한테서 농악을 배웠고, 16세 때엔 박성근(쇠)과 김오채(장고)의 농악가락을 전수받았다. 김오채는 광주(光州)사람이지만 가락은 단조로워도 멋이 있었다.

또한 20세 때엔 김재옥(쇠)한테 농악을 학습하는 한편, 20세 이후로는 김성낙(쇠) · 이정범(장고) · 이동원(장고) · 전사섭(장고) 등과 함께 농악을 연마하였고, 농악단체(전북 여성농악단 · 호남 여성농악단 · 전주 아리랑 여성농악단 · 유지화농악단 등)를 운영해왔다.

박남식과 김재옥은 김판바우(일명 김판암 · 김바우)의 제자이고, 박성근과 김판바우의 쇠는 정읍사람 김도삼(金道三)-박만풍으로 계보가 올라간다. 장고에서 정읍군 영원면 앵성리 출신의 이명식은 김대근(김판바우의 아들, 일명 작은 바우)의 제자이고 전사섭과 김대근의 계보는 김홍집으로 올라간다.

이 농악의 판굿은 처음에 일오삼채로 굿을 이루고 봉을 싼 다음 풀고 ① 인사굿 ② 오채질굿 ③ 좌질굿 ④ 늦은 삼채 ⑤ 양산도 ⑥ 삼채굿(빠른 된삼채로 맺는다) ⑦ 오방진(느린 오방진/陣오방진/진을 풀면서 삼채를 친 후 된삼채로 몰아서 맺는다) ⑧ 허허굿 내드름과 자진허허굿 ⑨ 삼채를 치고 된삼채로 맺은 다음 개인놀이(채상놀이 · 설장구 · 쇠놀이 · 12발상모)를 하고 인사굿으로 끝난다.

예전엔 허허굿 앞에 ‘두마치굿’이 있었다. 또한 자진허허굿 뒤에 일광놀이(쇠잽이 넷이 춤추고 들어가 쇠를 땅(네 곳)에다 두고 나오면 설장고가 장고 · 북 · 소고수들을 이끌고 쇠 놓인 곳을 돌고 나온다. 쇠잽이가 다시 들어가 쇠를 주어들고 짝두름을 친다)를 넣는다.

정읍농악의 굿패는 일반적으로, 기수 4(용당기 · 농기 · 영기 2), 쇠 4, 징 2, 장고 6, 북 2, 고깔소고 8 · 채상소고 8 · 잡색(양반광대 · 각시 · 조리중 · 대포수 등)으로 편성된다. 1996년에 전라북도 무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이리농악』(이소라, 문화재청,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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