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농악은 조선시대부터 전승되어 온 호남우도 지역인 정읍에서 전승되어 온 농악이다. 1890년대 증산교와 1910년대 보천교의 영향으로 크게 발전하였다. 1948년 제1회 전국농악경연대회에 대통령상을 수상할 정도로 활동이 왕성하였다. 1960년대부터 명인들이 타 지역으로 전출하면서 쇠락하였다가 1990년대에 새롭게 정비되면서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판제는 내드름 [얼림굿 또는 어룸굿], 인사굿, 오채질굿, 오방진굿, 호호굿, 도둑재비[또는 일광놀이], 개인놀이 등으로 구성된다.
정읍농악은 1800년대 후반에 증산교(甑山敎)가 무속과 함께 농악을 권장하였고, 1910년대에는 600만 교도를 자랑하던 보천교(普天敎)가 정읍시 입암면 대흥리에 본부를 두며 농악을 행사 의례 양식으로 채용하게 되면서 전국 각지의 농악인들이 정읍으로 모여들면서 크게 발전하였다. 1936년에는 보천교 농악이 해체되었으나 김도삼, 김홍술, 김바우, 최화집 등에 의해 크게 발전하면서 판제가 갖추어졌다.
광복 이후 1948년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경축하기 위해 창경궁에서 개최된 제1회 전국농악경연대회에 출전하여 정읍농악단이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당시 쇠재비는 상쇠 김광래 이하 박남식, 신두옥, 전이섭, 정성권 순이었고, 장구는 상장구 이봉문 이하 김홍집, 이정범, 전사섭, 김병섭의 순이었으며, 12발상모에 백남식[백남윤], 대포수(大砲手)에 이봉춘, 전재성[전재선] 등이었다.
1960~1980년대에는 주요 명인들이 서울이나 다른 지역으로 전출하면서 전승이 약간 주춤하였으나 1990년대에 상쇠 유지화(兪枝和)를 중심으로 소고재비에 김종수, 김진철 등이 합류하면서 정읍농악이 새로 정비되었다. 1996년 3월 29일 전라북도 무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른다.
정읍농악 판굿의 판제는 내드름[어룸굿, 얼림굿, 일이삼채굿], 인사굿 후에 크게 첫째마당인 오채질굿, 둘째마당인 오방진굿, 셋째마당인 호호굿, 넷째마당인 도둑재비[또는 일광놀이], 다섯째마당인 개인놀이 등으로 구성된다.
첫째마당인 오채질굿은 우도가락의 꽃이라 불릴 만큼 2소박과 3소박이 혼합된 독특한 가락으로 구성된 장단으로, 호남우도농악에서만 전승되고 있는 특징적인 가락이다. 둘째마당인 오방진굿은 오방진가락 동살풀이장단을 치며 동서남북중앙의 다섯 방향으로 2~3개의 진을 만들어 감고 푸는 형태로 적군에게 아군의 병력을 감추며 위용을 보임으로써 사기를 꺾으려는 군사굿의 일종이다.
셋째마당인 호호굿은 징은 치지 않고 어깨에 얹어 걷는데, 매우 빠른 2소박과 3소박이 혼합된 빠른 좌질굿을 하다가 상쇠가 ‘깽 깽’을 치면 모든 치배들이 ‘허허’하고 받는 형태로, 군대의 점호를 상징하는 점호굿이다. 넷째마당인 도둑재비굿은 대포수가 쇠를 훔쳐 윗옷에 숨긴 뒤 설장구, 창부와 재담을 하는 부분으로, 쇠를 태양 즉 일광(日光)으로 간주하여, 이를 일광놀이라고도 한다. 다섯째 마당인 개인놀이는 단체놀이가 끝난 후에 개인이나 악기별로 쇠, 징, 북, 장구, 버꾸, 주1, 12발상모 등이 순서대로 최상의 솜씨를 뽐내는 절차이다. 재인놀이, 구정놀이라고도 한다.
정읍농악은 1948년에 전국농악경연대회에 출전하면서 군대의 군사들을 모집하는 모군악, 군사들을 불러 모으는 점호악, 군사들이 서로 인사하는 인사악, 아군의 진지를 구축하는 아진지 포진악, 적군의 진지를 탐색하는 적진지 탐색악, 적군과 이긴 후 개선하는 승전개선악, 집으로 돌아가는 귀향악 등으로 판제가 구성된 대표적인 군악농악이다. 1967년 호남농악에 관한 조사 보고서에는 호남우도농악의 주류를 이룬다고 기록될 만큼 호남우도농악을 대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