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시대 전라우수사, 전라병사,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청하현감으로 흥해군수 최보신(崔輔臣)과 함께 경상도동부지역에 침입한 왜적을 격퇴하여 민생을 안정시켰다. 1597년에 나주목사가 되어 적진에 들어가 46명을 귀순하게 하는 등 왜적소탕에 노력하다가 2년 뒤 명나라 장수 유정(劉綎)이 철군할 때 응대를 잘하지 못하여 교체되었다.
그 뒤 성주목사·경기수사·전라우수사를 거쳐 1619년(광해군 11)에 강계부사가 되었으나 신하의 도리를 지키지 않았다 하여 일시 파직되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충청수사로서 왕의 도강을 순조롭게 했고, 적과의 항쟁에서 공을 세워 누차 가자(加資)되었다.
그 뒤 전라병사를 거쳐 지중추부사가 되어 국방상 요새인 강화도의 수비강화를 건의하여 실시하게 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왕을 호종하여 남한산성에 입거(入居)하였다. 1642년에 80세로 은퇴하고 노인직으로 숭정대부(崇政大夫)에 올랐다. 뒤에 우의정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대동야승(大東野乘)』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