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일(延日).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정담(鄭霮)이다.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 1588년 병조판서 이산해(李山海)에게 발탁되어 수문장(守門將)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청하현감으로 흥해군수 최보신(崔輔臣)과 함께 경상도동부지역에 침입한 왜적을 격퇴하여 민생을 안정시켰다. 1597년에 나주목사가 되어 적진에 들어가 46명을 귀순하게 하는 등 왜적소탕에 노력하다가 2년 뒤 명나라 장수 유정(劉綎)이 철군할 때 응대를 잘하지 못하여 교체되었다.
그 뒤 성주목사·경기수사·전라우수사를 거쳐 1619년(광해군 11)에 강계부사가 되었으나 신하의 도리를 지키지 않았다 하여 일시 파직되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충청수사로서 왕의 도강을 순조롭게 했고, 적과의 항쟁에서 공을 세워 누차 가자(加資)되었다.
그 뒤 전라병사를 거쳐 지중추부사가 되어 국방상 요새인 강화도의 수비강화를 건의하여 실시하게 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왕을 호종하여 남한산성에 입거(入居)하였다. 1642년에 80세로 은퇴하고 노인직으로 숭정대부(崇政大夫)에 올랐다. 뒤에 우의정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