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태(卞榮泰) 전 국무총리를 비롯한 구 자유당계 일부와 무소속 정파가 중심이 되어 군사정권을 종식시키고 순수한 민정 복귀를 지향한다는 취지하에 1963년 8월 29일정민회(正民會)라는 명칭으로 창당하여 9월 9일 정당 등록하였다.
창당대회에서 변영태를 총재에 추대하고 중앙위원회의장에 인태식(印泰植), 정책위원장에 정명섭(丁明燮) 등을 선임하였으나, 대통령후보로 지명된 변영태는 선거 직후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인태식과 정명섭도 민주공화당과 자유민주당에 각각 입당함에 따라 창당 2개월 만에 당 간부진의 개편에 따른 진통을 겪었다.
1967년 3월 30일 제3차 전국대의원대회에서 당헌 일부 개정과 함께 당명을 정의당으로 바꾸었다. 당의 주요 정책으로는, ① 공명선거를 보장하기 위한 제반입법의 추진 및 공무원과 군·사법부의 엄정중립, ②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정치적 간섭 및 생산성 향상을 억압하는 관권의 배제, ③ 국영기업체의 합리적 운영 및 중소기업의 적극적 육성, ④ 한일조약의 재수정 및 평화선 회복으로 수자원보호와 어로의 현대화, ⑤ 서민대중 보호를 위한 물가억제 및 생필품에 대한 간접세의 인하, ⑥ 영세민의 주택난 해소 촉진 등이었다.
제5대 대통령선거에서는 변영태가 입후보하여 총 유효투표 수의 2%인 22만4443표를 얻었으며, 그 해 11월 제6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지역구후보 36명, 전국구후보 5명을 공천하였으나 모두 낙선하였다. 1967년 제6대 대통령선거에는 이세진(李世鎭)이 출마하였으나 9만8433표의 획득에 그쳤으며, 제7대 국회의원선거에도 지역구 16명, 전국구 1명을 공천하였으나 모두 낙선하였다.
제7대 대통령선거에는 진복기(陳福基) 총재가 출마하였으나, 12만 2,914표를 얻는 데 그쳐 낙선하였다. 그 뒤 「정당법」에 규정된 법정지구당 수 77개에 못미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등록취소로 1971년 5월 4일 소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