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 정치·법제
  • 단체
  • 현대
1967년 종전의 정민회(正民會)가 당헌 개정과 함께 당명을 바꾼 정당.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강주진 (전 방송심의위원회, 정치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1967년 종전의 정민회(正民會)가 당헌 개정과 함께 당명을 바꾼 정당.

내용

변영태(卞榮泰) 전 국무총리를 비롯한 구 자유당계 일부와 무소속 정파가 중심이 되어 군사정권을 종식시키고 순수한 민정 복귀를 지향한다는 취지하에 1963년 8월 29일정민회(正民會)라는 명칭으로 창당하여 9월 9일 정당 등록하였다.

창당대회에서 변영태를 총재에 추대하고 중앙위원회의장에 인태식(印泰植), 정책위원장에 정명섭(丁明燮) 등을 선임하였으나, 대통령후보로 지명된 변영태는 선거 직후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인태식과 정명섭도 민주공화당과 자유민주당에 각각 입당함에 따라 창당 2개월 만에 당 간부진의 개편에 따른 진통을 겪었다.

1967년 3월 30일 제3차 전국대의원대회에서 당헌 일부 개정과 함께 당명을 정의당으로 바꾸었다. 당의 주요 정책으로는, ① 공명선거를 보장하기 위한 제반입법의 추진 및 공무원과 군·사법부의 엄정중립, ②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정치적 간섭 및 생산성 향상을 억압하는 관권의 배제, ③ 국영기업체의 합리적 운영 및 중소기업의 적극적 육성, ④ 한일조약의 재수정 및 평화선 회복으로 수자원보호와 어로의 현대화, ⑤ 서민대중 보호를 위한 물가억제 및 생필품에 대한 간접세의 인하, ⑥ 영세민의 주택난 해소 촉진 등이었다.

제5대 대통령선거에서는 변영태가 입후보하여 총 유효투표 수의 2%인 22만4443표를 얻었으며, 그 해 11월 제6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지역구후보 36명, 전국구후보 5명을 공천하였으나 모두 낙선하였다. 1967년 제6대 대통령선거에는 이세진(李世鎭)이 출마하였으나 9만8433표의 획득에 그쳤으며, 제7대 국회의원선거에도 지역구 16명, 전국구 1명을 공천하였으나 모두 낙선하였다.

제7대 대통령선거에는 진복기(陳福基) 총재가 출마하였으나, 12만 2,914표를 얻는 데 그쳐 낙선하였다. 그 뒤 「정당법」에 규정된 법정지구당 수 77개에 못미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등록취소로 1971년 5월 4일 소멸되었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정당사』1(중앙선거관리위원회, 1973)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