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주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봉상시첨정, 사섬시정, 정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방무(邦武), 유성(由盛)
  • 성재(惺齋)
인물/전통 인물
  • 본관광주(光州)
  • 사망 연도1583년(선조 1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사섬시정|정주목사
  • 출생 연도1530년(중종 25)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장동익 (경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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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봉상시첨정, 사섬시정, 정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방무(邦武)·유성(由盛), 호는 성재(醒齋). 정찬우(鄭纘禹)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순인(鄭純仁)이고, 아버지는 성균진사 정경(鄭褧)이며, 어머니는 평강채씨(平康蔡氏)로 진사 채순(蔡恂)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58년(명종 13) 생원시·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1568년(선조 1)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갑과로 급제하여, 의영고직장(義盈庫直長)에 초수되었다. 이 후 예문관검열·승정원주서·성균관전적을 거쳐, 공조·형조·예조의 좌랑을 역임하였다.

예조좌랑으로 재직시에는 기사관을 겸하여 『명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 후 정언이 되어 활발한 언론활동을 전개하였으며, 평안도도사를 거쳐 1573년 지평이 되고, 직강과 형조·예조·호조의 정랑을 지낸 뒤 경상도경차관으로 나갔다.

이 때 민폐를 많이 끼치고, 무뢰배인 서제(庶弟)를 이목으로 삼아 토색(討索)을 심히 한다는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으나, 대사헌 심의겸(沈義謙)이 이를 변호하여 병을 명목으로 체직되었다. 1576년 경기어사를 거쳐 헌납에 이르렀다.

이 때 심의겸·김효원(金孝元)의 대립이 있자, 대사간 정지연(鄭芝衍), 부제학 이이(李珥) 등과 더불어 그들을 외보(外補)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 후 장령·봉상시첨정·사예·사성·사섬시정을 거쳐, 1578년(선조 11) 다시 어사로서 양계·하삼도를 순무하고 정주목사를 역임한 뒤 춘천으로 내려가 있다가 죽었다. 저서로는 『성재집』이 있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상촌고(象村稿)』

  • - 『간이집(簡易集)』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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