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김한복(金漢福)·김두산(金斗山). 경상북도 문경 출신. 1907년 한국군대가 강제로 해산당할 때 지방 의병투쟁에 가담, 항일운동을 전개하다가 잡혀 1910년에 방면되었다.
그 뒤 1919년 3·1운동 당시 33인의 한 사람인 이승훈(李昇薰)과 함께 독립운동에 가담, 활동하였다. 그 뒤 중국 상해(上海)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내무총장 안창호(安昌浩)와 접촉하고, 군자금 모집의 특수사명을 띠고 다시 국내로 잠입하였다.
1919년 7월 신덕영(申德永)으로부터 권총 두자루와 독립선언서·독립신문을 받아 독립운동자금조달을 결정하였다. 그해 12월까지 모두 아홉 차례에 걸쳐 1,500여 원을 마련, 임시정부에 송금한 뒤 일본경찰에 붙잡혔다. 1921년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