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함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중기에, 형조좌랑, 병조정랑, 영덕현령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덕혼(德渾)
금월헌(琴月軒)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46년(명종 1)
사망 연도
1613년(광해군 5)
본관
서산(瑞山)
주요 관직
병조정랑|영덕현령
관련 사건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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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형조좌랑, 병조정랑, 영덕현령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서산(瑞山). 자는 덕혼(德渾), 호는 금월헌(琴月軒). 정희(鄭僖)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언우(鄭彦佑)이고, 아버지는 정건(鄭健)이며, 대북의 영수 정인홍(鄭仁弘)의 동생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88년(선조 21) 진사시에 합격하고 오랫동안 학업을 계속하였다. 1601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형조좌랑에 특별히 임용되고, 이어 이듬해는 병조정랑을 역임하였다. 그런데 당시의 정계는 붕당 사이의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고 있었다.

이 때 그는 종형인 인홍의 처사를 못마땅히 여겨 비판, 상소하니, 이후 그는 반대당파에 의하여 수시로 탄핵을 받고 견제를 당하였다. 그리하여 1602년 병조정랑에서 파직되었다가 1604년 복직되었으나 곧 영덕현령으로 좌천되었다.

일찍이 1592년 임진왜란 때는 합천에서 곽재우(郭再祐)와 더불어 의병을 일으켜 왜적토벌에 힘썼고, 선조가 의주로 피난하자 어가를 호종하였다. 이에 그 충의가 가상히 여겨져 호종공신 2등에 책록되었다. 광해군이 즉위하여 정치가 문란해지고, 또 인홍과의 갈등으로 벼슬을 버리고 향리인 합천에 은거하여 여생을 보냈다. 인조 때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사마방목(司馬榜目)』
『합천읍지(陜川邑誌)』
『한국계항보(韓國系行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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