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여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후기 상장군, 지추밀원사, 지첨의부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276년(충렬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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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고려후기 상장군, 지추밀원사, 지첨의부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1254년(고종 41) 몽골군이 침입하였다가 물러가자 낭장(郞將)으로 소경(少卿) 박여익(朴汝翼)과 함께 몽골 군사가 모두 철수하였는가를 살피고 천룡(天龍: 지금의 충청북도 충주 부근) ·양근(楊根: 지금의 경기도 양평)의 2성(城)을 안무(按撫: 백성의 형편을 살피고 위무함)하였다.

1269년 세자(뒤에 충렬왕)가 원나라에 입조(入朝)할 때 대장군으로서 호종하였고, 같은 해 임연이 원종을 폐위시키자 반드시 부왕(父王)을 복위시키거나 그렇게 못하면 순안후(順安侯) 왕종(王悰)을 왕으로 세워야 한다는 세자의 글을 가지고 돌아왔다.

1271년 1월 관노(官奴) 숭겸(崇謙)·공덕(功德) 등이 그 무리를 모아 다루가치(達魯花赤)와 고려의 관리들을 죽이고 진도의 삼별초에 투항하려고 하자 상장군으로서 지추밀원사 이현원(李玄原)과 함께 원나라 사신 탈타아(脫朶兒, 톡토르)에게 알려 난을 평정하였다.

이듬해 상장군으로서 대장군 이분희(李汾禧)와 함께 강화도에 파견되어 개경정부의 출륙·환도를 추진하였다. 1271년 5월 진도에 웅거하던 삼별초를 평정한 데 대한 사의 표명을 위하여 몽고에 파견되기도 하였다.

1274년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로 원나라에 가서 충렬왕과 황제의 공주를 혼례시켜 고려로 보내 준 것과 충렬왕의 즉위를 허락해 준 것에 대해 하례하였고, 1276년 지첨의부사(知僉議府事)로 별세하였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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