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수원(秀遠), 호는 죽헌(竹軒). 정창연(鄭昌衍)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광성(鄭廣成)이고, 아버지는 영의정 정태화(鄭太和)이며, 어머니는 민선철(閔宣哲)의 딸이다. 좌의정 정치화(鄭致和)에게 입양되었다.
1656년(효종 7) 효종의 다섯째 딸 숙정공주(淑靜公主)와 혼인하여 동평위(東平尉)가 되었다. 숙정공주가 일찍 죽고, 1681년(숙종 7) 독자이던 정효선(鄭孝先)이 요절하자 재취할 것을 상소하여 왕의 허락을 받았으나, 대간의 반대로 이루지 못하였다. 이 때부터 부마들은 재취할 수 없다는 법규가 정하여졌다.
1670년(현종 11) 사은정사로, 1705년에는 동지정사로, 1711년에는 동지 겸 사은정사로 청나라에 세 차례나 다녀왔다. 1716년『열성지장통기(列聖誌狀通記)』를 증보, 간행하였다. 또한, 저서로 『공사견문록(公私見聞錄)』·『한거만록(閑居漫錄)』 등 수필형식의 기록이 있다.
기국(器局)이 준위(俊偉)하고 생활이 검소하여 모두 왕의 사위인 줄을 몰랐다고 한다. 시호는 익효(翼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