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실기 ()

유교
문헌
조선전기 문신 조상치의 유고와 관련 자료를 모아 1854년에 간행한 실기.
정의
조선전기 문신 조상치의 유고와 관련 자료를 모아 1854년에 간행한 실기.
편찬/발간 경위

1854년(철종 5) 조상치의 후손 조석우(曺錫雨)가 여러 문헌에서 수습해 간행한 것이며, 현재 전하는 것은 뒤에 중간된 것이다. 권두에 박영원(朴永元)·이한응(李漢膺)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이휘령(李彙寧)의 발문과 18세손 조현(曺顯)의 중간발(重刊跋)이 있다.

서지적 사항

2권 1책. 목판본. 규장각 도서와 국립중앙도서관, 한국국학진흥원 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권상은 시로 단종의 시에 봉답(奉答)한 「자규사(子規詞)」 1수와 이에 차운한 김시습(金時習) 등의 시 5수, 「구은동별시(九隱洞別詩)」와 이에 차운한 김시습의 시 1수가 있다. 문으로는 1419년(세종 1) 증광문과에 장원으로 뽑힌 책문, 1467년(세조 13) 단종의 제사에 올린 「제상왕축문(祭上王祝文)」, 자신이 세조의 신하가 아님을 밝힌 「노산조부제학포인조상치지묘(魯山朝副提學逋人曺尙治之墓)」라는 비문과 이에 대한 자주(自註)가 있다.

권하는 부록으로 저자의 생애와 제향에 관한 자료들로 되어 있다. 10대손 조하망(曺夏望)의 유사, 11대손 조명교(曺命敎)의 유사후속록(遺事後續錄), 임영(林泳)의 묘갈명 등은 저자의 생애와 지절(志節)을 기린 글들이다. 「증시교지(贈諡敎旨)」와 14대손 조석중(曺錫中)의 「증시전말(贈諡顚末)」은 1791년(정조 15) 충정(忠貞)이라는 시호가 내려진 사실과 그에 얽힌 사연을 기록한 것이다.

11대손 조선적(曺善迪)의 「입사기실(立祠記實)」, 오광운(吳光運)의 「창주강당상량문(滄洲講堂上梁文)」, 조현명(趙顯命)의 「사당기(祠堂記)」, 이상정(李象靖)의 「창주별묘봉안문(滄洲別廟奉安文)」 등은 1719년(숙종 45) 저자를 봉안하기 위해 지은 창주서원(滄洲書院)의 창건과 훼철, 그리고 그 전후의 사정에 관계된 것이다. 「동학서원사적(東學書院事蹟)」과 「동학서원팔선생추향봉안문(東學書院八先生追享奉安文)」은 저자가 1830년(순조 30)에 창건된 동학서원에 배향된 내력을 담고 있다.

「금화구은동사적(金化九隱洞事蹟)」과 「구은사상량문(九隱祠上梁文)」은 세조의 왕위 찬탈 직후 단종에 대한 충절의 뜻을 보인 저자와 김시습·박도(朴渡) 등 9인을 금화 구은사에 제향하기까지의 내력을 적은 것이다. 그밖에 하권 말미에는 1419년의 문과 전시방목(殿試榜目)이 실려 있다. 세조 즉위 전후의 주요 인물들의 동향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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