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호

  • 역사
  • 인물
  • 개항기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때, 파리장서에 서명하였으며, 임시정부에서 국내 연통제 조직이 완료될 수 있도록 힘쓴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91년(고종 28)
  • 사망 연도1943년
  • 출생지경상북도 영천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현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파리장서에 서명하였으며, 임시정부에서 국내 연통제 조직이 완료될 수 있도록 힘쓴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경상북도 영천 출신. 1919년 초에 개최된 파리평화회의에서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이 이루어지자 한국민의 독립의지를 그곳 국제회의에 반영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전국 유림대표가 그곳 회의장에 독립을 청원하기 위한 파리장서(巴里長書)를 계획하고 곽종석(郭鍾錫) 등 137인이 이에 연서하자, 그중 한 사람으로 서명하였다.

서울 일대의 3·1운동이 영남 지역으로 발전하자 각 지방을 은밀히 돌면서 서울의 격렬한 독립시위운동을 전파, 격려하였다. 그러나 일제 헌병의 잔혹한 무력 저지로 활동이 억제당하자 동삼성(東三省) 지방으로 망명하여 새로운 독립운동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그 당시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되어 활동을 시작하자 안창호(安昌浩) 등과 제휴하여 국내 연통제 조직을 위임받았다. 국내로 들어와 동지를 포섭하고 함경남북도 지방 내 10여 개 군에 이 조직을 완료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였다.

1920년에 감시하던 일본경찰에 붙잡혀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복역한 후 만기 출옥하였다.

그 뒤 동삼성으로 건너가 계속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27년 동삼성 봉천(奉天)·목단강성(牧丹江省)·해림청산리(海林靑山里) 등지에서 동지들과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다시 개원(開原) 주재 일본경찰에 붙잡혀 신의주형무소에서 2년간 복역하였다.

복역을 마치고 강원도 횡성으로 거주를 옮겨 은신한 뒤 다시 함경도 일대로 가서 군자금을 모집하였으며, 중경(重慶)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이를 송달하기 위해 중국으로 가던 중 붙잡혀 다시 3년형을 선고받았다.

용정형무소에서 복역 중 7개월 만인 1943년 12월 27일 고문의 여독으로 옥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3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독립유공자공훈록』4(국가보훈처, 1987)

  • - 『대한민국임시정부사』(이현희, 집문당, 1982)

  • - 『독립운동사』4(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