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성

  • 예술·체육
  • 유적
  • 조선 전기
북한 평안북도 정주군 정주읍에 있는 조선시대 홍경래의 난과 관련된 성곽. 읍성.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호관 (문화재연구소, 고고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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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북한 평안북도 정주군 정주읍에 있는 조선시대 홍경래의 난과 관련된 성곽. 읍성.

내용

조선 초기에 흙으로 쌓았던 토축의 성이었으나, 뒤에 석성으로 개축한 정주의 읍성(邑城)이다. 성 동남쪽으로는 북쪽으로부터 달천(㺚川)이 흐르고, 북쪽 봉우리에는 북장대(北將臺)가 있다.

이 북장대로부터 정주∼곽산간을 통하는 도로까지의 사이에는 지형을 따라 굴곡을 이룬 성벽이 있고, 북문터·서문터가 남아 있다. 성벽 둘레는 성 안 중심부 동북쪽으로부터 서남방향으로 쭉 뻗은 성벽의 흔적이 있는데, 이로써 초기의 내성과 외성을 구획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성벽 높이는 2∼5m에 이르고 있으며, 성곽의 주요 지점에는 치성(雉城 : 성벽에서 돌출시켜 쌓은 성)을 설치되어 있다. 이 성은 1811(순조 11)년에 발생한 홍경래(洪景來)의 난 때 성내의 서장대에서 홍경래가 난군을 직접 지휘하던 곳으로 유명하다.

참고문헌

  • - 『북한의 문화유적 순례』(양태진, 백산출판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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