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택지(宅之). 정유성(鄭維城)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상징(鄭尙徵)이고, 아버지는 방어사(防禦使) 정제태(鄭濟泰)이며, 어머니는 한후상(韓後相)의 딸이다.
1723년 진사시에 합격한 뒤, 1735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설서·정언을 거쳐 지평·수찬·장령·겸필선·교리·부응교·승지 등의 청직을 역임하였다. 입사 초기에는 유건기(兪健基) 등과 함께 조정의 연소한 무리들이 과격해지는 성향을 지적하여 이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게 하는 등 언관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였다.
1743년(영조 19)에는 딸이 세자빈으로 삼간택(三揀擇: 세 사람의 후보자를 간택하기 위하여 올리는 일)의 명단에까지 올랐으며, 이듬해에 전라도관찰사로 임명되었으나 성격이 유약하다는 대간의 탄핵을 받아 교체되었다.
1745년에 동지부사(冬至副使)에 임명되어 조관빈(趙觀彬)·민병상(閔丙祥) 등과 함께 중국을 다녀왔다. 이듬해 복명(復命)시 백두산 동쪽에 거주하던 호인(胡人)의 부락 중 하나인 등등기(鄧鄧磯)가 침략할 기미가 보이니, 이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할 것을 주장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