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형조참판, 도승지, 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77년(숙종 3) 도승지 재직시 왜관(倭館)의 역사에 목재를 과다하게 사용하였다는 윤휴(尹鑴)와 허적(許積)의 탄핵을 받아 양주에 유배되기도 하였다. 이 후 복권되어 형조참판, 도승지, 경기도관찰사를 역임하였으나, 왕후를 모함한 이옥(李沃)을 벌주라고 상소한 김정로(金井老)를 오히려 치죄하였다는 정언 임원구(任元耉)의 논계(論啓)로 인해 다시 파직되었다.
그는 단종(端宗)의 고모인 경혜공주(敬惠公主)의 아들인 찬성(贊成) 정미수(鄭眉壽)의 후손으로, 그의 사후에 진행된 단종의 복위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단종과 그의 비인 정순왕후(定順王后) 송씨(宋氏)의 신주(神主)를 그의 집에 봉안하였던 사실이 드러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효종실록(孝宗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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