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하동(河東)이다. 원나라에 자주 내왕하다가 뒷날 공민왕이 되는 강릉대군(江陵大君)을 만나 시종하였다. 그 공으로 공민왕이 즉위하자 발탁되어 1354년(공민왕 3)에 감찰지평(監察持平)이 되었다.
다음 해 전라도안렴사(全羅道按廉使)가 되어 고려사람으로 원나라 황제의 신임을 받아, 어향사(御香使)로 고려에 와서 행패를 일삼던 야사부카[埜思不花]를 감금하고 그 아우를 살해하여 원나라 단사관(斷事官)으로부터 국문을 받고 투옥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기철(奇轍) 등 부원파(附元派)가 공민왕의 배원정책에 따라 모두 제거되자 석방되어 순군제공(巡軍提控)이 되어 왕을 시위하였다. 그 뒤 여러 차례 전임하여 호부시랑 어사중승(戶部侍郎御史中丞)이 되었다.
1358년 왜적이 수원에 이르자 찰방(察訪)에 임명되어 군사를 이끌고 가서 방어하였다. 1362년 어사중승으로 있으면서 고용보(高龍普)·안우(安祐)·이방실(李芳實) 등의 제거에 관여하였다. 관직이 판사(判事)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