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6년(충숙왕 5) 우상시(右常侍)로서 충숙왕의 명령을 받고 집의인 왕백(王伯) 등과 함께 전왕인 충선왕이 사용한 재물을 징발, 환수하였다. 또, 천인을 면하고 양인이 된 자들도 천례(賤隷)로 환속시켰다.
아울러 충선왕의 공신전(功臣田)을 거두어 원 전주에게 되돌려주도록 하였다. 1339년 찬성사로 있으면서 경화공주(慶華公主)에 의하여 정동성(征東省)에 감금되었다가 며칠 뒤 덕녕공주(德寧公主)의 도움으로 탈출하여 궁중에 숨기도 하였다.
1344년 충목왕이 즉위하자 충숙왕의 총신이었다는 이유로 지방으로 쫓겨나게 되었는데도 정방(政房)에 드나들다가, 헌납 원송수(元松壽)·곽충수(郭忠秀) 등의 탄핵을 받았으나 다시 찬성사가 되었다. 1351년(공민왕 즉위년) 이제현(李齊賢)의 탄핵으로 제주목사로 좌천되었다.
이듬해 조일신(趙日新)의 일당으로 기원(奇轅)을 살해하고 왕이 있는 이궁을 포위하고 숙위하는 판밀직사사 최덕림(崔德林) 등을 살해한 뒤, 공민왕을 위협하여 어보(御寶)를 얻게 하고 스스로 좌정승이 되었다. 1353년 조일신이 살해되자 함께 주살되었으며, 가산도 몰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