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춘서(春西). 충청북도 청주 출신. 1907년 군대해산령이 내리자 향리인 청주에서 한봉서(韓鳳瑞)와 모의, 의병을 모아 거의하였다.
이 때 의병 9명과 같이 일본군의 우편물 운반원 2명을 사살하고, 군용총 2정, 총검 두자루, 탄약함 두개, 탄약 10발을 노획하였다.
그 뒤 각지에서 군자금모금중 음력 5월 청주 백자동의 박내천(朴來舛)이 의병소재를 일본경찰에게 밀고하여 습격당하였다.
8월에 청주 화죽리에서 밀정 박내천을 이정규(李正奎)와 함께 참살하고, 10월 김덕보(金德甫)와 이주사(李主事)로부터 군자금 50원을 조달하다가 붙잡혔다. 공주지법 청주지부에서 교수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으나 기각되어 순국하였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