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1책. 목판본. 1686년(숙종 12) 4월에 전라도 낙안 금화산 징광사(澄光寺)에서 개간하였다. 현재 동국대, 고려대, 국립중앙도서관 등에서 소장하고 있다.
백암 성총(栢庵性聰)은 1681년 6월에 태풍을 만나 전라남도 신안의 임자도 근처에 표류한 중국 선박에서 흩어진 가흥대장경 불서를 수집하였다. 1685년에 4년 동안 수집한 불서를 가지고 낙안 징광사에 가서 1700년에 입적할 때까지 제자들과 함께 15년간 불서 간행에 매진했다.
1625년경 섭기윤(葉祺胤)이 회편한 청량 징관의 『화엄경소초(華嚴經疏鈔)』 80권을 비롯하여 조선 후기 이력,과목 등 대략 12종 197권의 불서를 간행하였다. 『정토보서』는 성총이 간행한 불서 중에서 가장 먼저 판각된 것이다. 『정토보서』는 『정토자량전집(淨土資糧全集)』, 『정토신종(淨土晨鐘)』, 『귀원직지(歸元直指)』 등에 인용된 정토 관련 글들이 편집되어 있다. 성총은 서문에서 “근래에 중국 정토 관련 서적을 무려 10여 질이나 얻었다. (중략) 여러 저술을 모으고 그 가운데서 훌륭한 격언과 고금 왕생의 아름다운 글들을 가려 뽑아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라고 밝혔듯이 『정토보서』는 수집한 중국 불서에서 채록한 글을 간행한 것이다. 1686년 징광사 간행 당시 인희(印熙)가 화사(化士)를 담당했다.
본문에서는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의 인지(因地)와 유래를 경전에서 설명하고 나서 정토의 믿음을 일으키는 이유와 조건을 서술하고 정토업(淨土業)을 닦을 것을 권하였다. 「염불법문」에서는 염불할 때 의식을 장엄하게 하는 것보다 진실한 수행을 하는 것을 더 귀하게 여겨야 함을 밝혔고, 재가거사(在家居士)는 검은 옷을 입거나 도건(道巾)을 착용할 것 없이 평소의 의복 그대로 염불하되 북을 치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고요함을 좋아하는 사람은 소리를 내지 않고 묵묵히 하여도 좋으며, 애써 무리를 모아 할 것은 없으며, 문을 닫고 하는 것도 무방함을 밝혔다. 다만, 몸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맑게 한 뒤 서쪽을 향하여 묵묵히 앉아 눈을 감고 아미타불의 진금색신(眞金色身)이 칠보(七寶)의 연못 위에 앉아 있는데 미간의 흰털에서 광명을 놓는 것을 관상(觀想)할 것과, 입으로 불명(佛名)을 부르며 마음으로 부처를 일념으로 생각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다음에는 염불의 열 가지 공덕과 염불과 송경으로 왕생한 이야기를 실었다. 이어서 『아미타경』을 실었으며, 다음으로 염불의 영험에 대한 20여 가지의 영험담을 모아 편집하였다. 「일과염불(日課念佛)」에서는 옛날 하루 1만 번 또는 3만 번 내지 10만 번 염불한 예를 들었고, 역대의 고승 대덕이 염불을 권고한 글들을 뽑아 놓았다. 「정토과험(淨土果驗)」에서는 염불 수행하던 고승들의 왕생 이야기 46건을 시작으로 역대 왕과 신하 36건, 선비와 백성 41건, 비구니 6건, 부녀자 37건, 악인 6건, 축생 7건 등의 왕생 이야기를 수록하였다. 끝으로 왕생정토다라니를 게재하고 이 주문을 20만 번 독송하면 보리의 싹이 나고, 30만 번 독송하면 오래지 않아 아미타불을 보게 된다고 하였다.
성총이 간행한 197권 중 대부분의 불서가 원문 그대로 복간된 반면, 『정토보서』는 1권에 불과하지만 그가 직접 편찬한 책으로 가장 먼저 간행된 점에서 주목된다. 또한 18세기 조선 후기 불교계에 나타난 선문 · 교문 · 염불문의 삼문수업(三門修業) 중 염불문의 성립에 기여한 불서로서 그 가치를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