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술초(述初), 호는 휴휴자(休休子). 승지 정성근(鄭誠謹)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승문원박사 정주신(鄭舟臣)이고, 아버지는 참봉 정원린(鄭元麟)이며, 어머니는 남원윤씨(南原尹氏)로 장사랑 정원(正元)의 딸이다.
본래 충절 가문의 유복자로 편모슬하에서 자라났으나, 나면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꿈에 아버지가 나타나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1589년(선조 22) 진사시에 합격하고 학업을 계속하던 중, 재행이 알려지면서 음직으로 회덕현감에 발탁되었다.
이어 함흥판관·은진현감을 역임하고 내직으로 옮겨 호조정랑을 지냈다. 광해군 말엽에 간신들에 휩싸여 정치기강이 문란해지면서 반대세력에 의하여 1618년(광해군 10) 탄핵, 좌천되었다. 인조반정 후 복직되어 삭녕군수·강화유수·청주목사를 지냈다.
1627년 노모가 병사하자, 『가례』에 의한 법도를 다하여 상례를 치렀다. 1630년(인조 8) 공청감사로서 황폐된 농촌사회를 복구하기 위하여 농민의 부담을 감축하는 등 치적을 쌓았다. 1636년 청나라군대가 재침해오자, 강화도를 지키고자 분투하다가 강화도가 함락되면서 순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