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요좌(堯佐). 정호(鄭湖)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고려 감찰대부(監察大夫) 정양생(鄭良生)이고, 아버지는 정부(鄭符)이며, 어머니는 이희필(李希泌)의 딸이다.
진사성균시에 합격한 뒤 음사(蔭仕)로 벼슬이 지평에 이르렀다.
1408년(태종 8) 좌정승 하륜(河崙)을 탄핵하다가 먼 곳에 유배되었다. 그 뒤 풀려나와 1411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이조정랑·병조정랑·좌헌납을 거쳐 1416년 장령이 되었다. 이 때 좌의정 박은(朴誾)이 정탁(鄭擢)과 노비문제로 송사를 일으키자, 박은을 탄핵하다 미움을 받아 배척당하여 4년 동안이나 등용되지 못하였다.
1418년 세종이 즉위하면서 봉상시소윤(奉常寺少尹)이 되고, 이어 집의·지형조사(知刑曹事)·대언(代言)을 거쳐 지신사(知申事)가 되어 기밀(機密)을 관장하였다. 그 뒤 이조참판·대사헌을 거쳐 형조판서에 오르고, 충청·전라·경상 3도의 도순무사가 되어 연해의 주군(州郡)의 성터를 심정(審定)하였다.
1435년(세종 17) 함길도도관찰사가 되어서는 새로 설치한 회령 등 4진(鎭)의 수비에 공헌하고, 어머니의 병환으로 돌아와 중추원사가 되어 죽었다. 사람됨이 풍채가 좋고 밖으로는 유화하나 내심은 강직하였으며, 독서를 좋아하였는데, 특히 『사기(史記)』·『한서(漢書)』를 잘 외었다.
일찍이 황보인(皇甫仁)과 함께 『진설(陣說)』을 지어 올렸고, 천문에도 밝아 세종의 명으로 역법(曆法)을 연구하기도 하였다. 시호는 문경(文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