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는 천자가 반포한 제도적 명령을 지칭하고, 조는 천자가 신민에게 알리는 선지(宣旨)를 의미하였다. 그러던 것이 진시황(秦始皇) 26년에 명(命)을 고쳐 ‘제’라 하고 영(令)을 ‘조’라고 하였다.
한나라에 이르러는 제와 조를 다같이 천자의 말로 간주하여 동일하게 써오게 되었다. 그러나 당송 때의 제는 관원을 임용하는 것이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 초기에 제의 문체를 사용하면서 한대의 방식을 따르지 않고 당송 때의 제도를 원용하였다.
≪문체명변 文體明辨≫에 따르면 당나라에서는 제서(制書)가 크게 관원을 상주거나 벌할 때, 또는 죄를 사면할 때, 죄수를 핵실(覈實 : 일의 실상을 조사함.)할 때, 관원을 크게 등용할 때에 쓰였다고 한다. 공로를 포상하거나 위로할 때는 따로 위로하는 제서가 있었다.
송나라에도 당나라에 이어서 삼공(三公)이나 삼성(三省 : 門下·中書·尙書)의 고관대작을 임용하거나 파면할 때 제서를 썼다. 그러나 관직을 임용할 때는 제서가 아닌 고(誥)를 썼다고 한다.
당송의 제서제도를 수용한 것이 ≪동문선≫ 제고편(制誥篇)을 살피면 역력히 드러난다. 신라왕 김부(金傅)에게 상보도성령(尙父都省令)을 제수한 것을 비롯하여, 이자연(李資淵)에게 중추사우상시(中樞使右常侍)를 하사한 것, 김부식(金富軾)에게 동덕찬화공신수태보(同德贊化功臣守太保) 등을 제수한 것들이 제서이다.
정공수(丁公壽)를 신룡위상장군(神龍胃衛上將軍)으로 삼는 관고(官誥 : 사령장)라든가 노지정(盧之正)을 금오위상장군(金吾衛上將軍)으로 삼는 관고 등이 바로 고인 것이다. 즉, 제는 고급관리, 고는 일반관리를 임용하는 사령장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