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우당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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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문헌
조선시대 때의 의병장, 박경전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63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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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때의 의병장, 박경전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63년에 간행한 시문집.
내용

3권 1책. 목활자본. 1863년(철종 14) 박성묵(朴星默)이 처음 간행하였고, 1897년 후손 정만(廷蔓)이 중간하였다. 권두에 이휘재(李彙載)·이종상(李鍾祥)의 서문이 있으며, 권말에 박태덕(朴太德)·박성묵·정만의 발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연세대학교 도서관, 한국학중앙연구원 도서관, 전남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에 시 16수, 서(書) 2편, 문(文) 7편, 권2·3에 부록으로 일기 1편, 잡저 1편, 시 2수, 만사 2수, 실기 1편, 서(序) 2편, 행장·묘갈명·유장(儒狀) 각 1편, 포계(褒啓) 등 9편, 상우재실적(尙友齋實蹟) 1편, 후서 2편, 묘표 2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문 중 「맹약문(盟約文)」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적과 대치하면서 의사들의 용기를 북돋우고 나라를 위하여 함께 죽기를 맹서한 충절이 넘치는 글이다.

「격문(檄文)」은 임진왜란 때 나라가 적에게 유린되고 임금은 북으로 피난을 가자 나라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백성이라 하고, 어려울 때 비겁하게 도망하다가 죽임을 당하는 것보다는 용감하게 싸워서 공을 세울 것을 촉구한 내용이다.

잡저는 이기옥(李璣玉)·김우옹(金宇顒) 등이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그의 공적을 드러내어 밝히고 포전을 내리기를 요청한 글이며, 「창의시일기(倡義時日記)」는 창의 당시에 장서기(掌書記)의 임무를 맡았던 김후생(金後生)이 기록한 일기로서, 1592년 왜적이 대거 침입하자 박경전이 의병을 모집하고 스스로 대장이 된 전말과 당시 공암진(孔巖陣)에서 군기를 제조하고 의병과 군량을 모은 사실, 정유재란 때 창녕의 화왕산성(火旺山城)에서 곽재우(郭再祐)와 결사고수를 맹세하고 정병 5,000으로 울산에서 전공을 세운 일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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