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간

  • 역사
  • 인물
  • 고려 후기
고려 후기에, 밀직부사, 검교첨의평리, 찬성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시호문양(文良)
인물/전통 인물
  • 본관김제(金堤)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검교첨의평리(檢校僉議評理)|찬성사(贊成事)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진성규 (중앙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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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후기에, 밀직부사, 검교첨의평리, 찬성사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김제(金堤). 1279년(충렬왕 5)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서적점녹사(書籍店錄事)에 보임되었고, 이듬해 왕이 문신들에게 시부(詩賦)를 시험할 때 또 수석을 차지하였으므로 황패(黃牌)를 받고 내시(內侍)에 소속되었다.

1288년에 국학직강(國學直講)으로 왕명에 의하여 새로운 악곡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벼슬이 점차 올라 보궐(補闕)이 되었을 때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3년간 시묘하자, 왕이 이를 가상하게 여겨 기거주(起居注)로 특진시켰고, 다시 첨의사인(僉議舍人)으로서 경상도안렴사(慶尙道按廉使)에 보임되었다.

1298년에는 좌사의(左司議)로 과거를 주관한 바 있고, 1300년 좌부승지로서 동지공거(同知貢擧: 부고시관)가 되어 진사를 뽑았다. 그 뒤 좌간의·좌승지를 거쳐 우상시권수밀직부사(右常侍權授密直副使)에 올랐다.

충선왕 때 형조시랑우간의대부(刑曹侍郎右諫議大夫)를 거쳐 밀직부사가 되었으며, 충숙왕 때 검교첨의평리(檢校僉議評理)를 역임한 뒤 찬성사에 올라 별세하였다. 시문에 뛰어나 조선 영조 때 유광익(柳光翼)의 『풍암집화(風巖輯話)』에도 수록되어 있다. 시호는 문양(文良)이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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