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도총관, 우의정,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경서(景瑞)
  • 이칭
  • 시호충정(忠定)
  • 하서(荷棲)
인물/전통 인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727년(영조 3)
  • 사망 연도1787년(정조 11)
  • 본관풍양(豊壤)
  • 주요 관직우의정|판중추부사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손승철 (전 강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도총관, 우의정,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풍양(豊壤). 초명은 준(㻐). 자는 경서(景瑞), 호는 하서(荷棲). 조중운(趙仲耘)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도보(趙道輔)이고, 아버지는 목사 조상기(趙尙紀)이며, 어머니는 임취(任冣)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63년(영조 39)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예문관검열을 거쳐 부제학·대사성을 지낸 뒤 정조가 즉위하면서 공조참판이 되었다. 그 뒤 좌승지·승문원제조·실록청당상관·대사헌을 지내고, 함경도관찰사가 되어 민폐를 없애고 군무를 개혁하는 등 명성을 떨쳤다.

이어 지돈녕부사가 되었다가 형조판서에 올라 지경연사(知經筵事)·홍문관제학·도총관을 겸하였다. 1786년(정조 10) 우의정으로 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를 겸임하면서, 당시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강화부에 귀양가 있던 은언군 인(恩彦君裀)의 처벌을 주장하는 상소를 여러 차례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한때 파직되었다가 다시 판중추부사로 기용되었다. 『문헌비고』 편집에 관계하여 학교고(學校考) 8편을 지었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고향에 정문이 세워졌다. 저서로는 『하서집』이 있다. 시호는 충정(忠定)이다.

참고문헌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