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공조판서, 우참찬, 우찬성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06년 박원종(朴元宗)·성희안(成希顔) 등이 중종반정을 도모하자, 여기에 가담하여 정국공신(靖國功臣) 2등에 책록되고 창녕군(昌寧君)에 봉하여졌다. 그 뒤 홍문관부제학으로 있으면서, 연산군이 죽자 각방당상(各房堂上)으로서 『연산군일기』 편찬에 참여하였다.
1507년(중종 2) 7월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파견되어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왔으며, 같은 해 12월에 충청도관찰사로 나아갔다가 1508년(중종 3) 대사헌에 올랐다. 1510년 다시 대사헌이 되고 공조참판을 거쳐, 이듬해 세번째로 대사헌이 되었다. 그 뒤 동지중추부사·한성부좌윤을 거쳐 이조참판을 역임하였다.
1512년 명나라에서 제주도 표류민을 쇄환하여 왔는데, 이 일로 진하사(進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514년 경상도관찰사가 되고 뒤에 예조·호조의 참판을 거쳐 공조판서에 올랐으나, 김안로(金安老)의 미움을 받아 파직되었다가, 1537년김안로가 제거된 뒤 다시 기용되어 우참찬이 되고, 1539년 우찬성에 이르렀다.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국조방목(國朝榜目)』
- 『백헌집(白軒集)』
- 『해동명신록(海東名臣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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