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경릉참봉, 청암찰방 등을 역임하였으며, 『북계집』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 해 함창(咸昌) 황령사(黃嶺寺)에서 친구 정경세(鄭經世) 등과 함께 창의하여 군기를 관리감독하였으며, 또 적과도 무려 70여 번이나 싸워 큰 공훈을 세웠다. 이 사실은 이봉(李逢)장군이 김성일(金誠一)에게 보내는 격문(檄文)에 상세히 나타나 있다.
1624년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이준(李埈)과 자신의 동생 및 자식 등 여러 동지들과 더불어 창의병을 소집하였으나 벌써 이괄의 난이 평정되었기 때문에 자연히 해산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조광벽은 평생을 임진란, 병자호란 등 국내외의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마다 나라를 위해 솔선하여 창의를 일으켜 몸소 적들과 대적하여 싸웠다. 이러한 공헌으로 200여 년 후에 연악서원(淵嶽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북계집(北溪集)』 2권이 있다.
참고문헌
- 『북계집(北溪集)』
- 『우복집(愚伏集)』
- 『창석집(蒼石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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