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벽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중기에, 경릉참봉, 청암찰방 등을 역임하였으며, 『북계집』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 북계(北溪)
  • 여완(汝完)
인물/전통 인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566년(명종 21)
  • 사망 연도1642년(인조 20)
  • 본관풍양(豊壤)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한여우 (전 동국대학교, 법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북계문집 미디어 정보

북계문집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중기에, 경릉참봉, 청암찰방 등을 역임하였으며, 『북계집』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여완(汝完), 호는 북계(北溪). 아버지는 조수복(趙壽福)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 서흥군(瑞興君) 이춘억(李春億)의 딸이다. 유성룡(柳成龍)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06년(선조 39)에 진사가 되었고, 1626년(인조 4) 덕행으로 천거되어 경릉참봉(敬陵參奉)에 제수되었다. 1637년에 청암찰방(靑巖察訪)으로 제수받았으나 1년도 못되어 사퇴하고 고향에 돌아왔으며, 1640년에 종묘직장(宗廟直長)으로 제수받았으나 나아가지 아니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 해 함창(咸昌) 황령사(黃嶺寺)에서 친구 정경세(鄭經世) 등과 함께 창의하여 군기를 관리감독하였으며, 또 적과도 무려 70여 번이나 싸워 큰 공훈을 세웠다. 이 사실은 이봉(李逢)장군이 김성일(金誠一)에게 보내는 격문(檄文)에 상세히 나타나 있다.

1624년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이준(李埈)과 자신의 동생 및 자식 등 여러 동지들과 더불어 창의병을 소집하였으나 벌써 이괄의 난이 평정되었기 때문에 자연히 해산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조광벽은 평생을 임진란, 병자호란 등 국내외의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마다 나라를 위해 솔선하여 창의를 일으켜 몸소 적들과 대적하여 싸웠다. 이러한 공헌으로 200여 년 후에 연악서원(淵嶽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북계집(北溪集)』 2권이 있다.

참고문헌

  • - 『북계집(北溪集)』

  • - 『우복집(愚伏集)』

  • - 『창석집(蒼石集)』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