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양(平壤). 자는 온중(溫仲). 자의도첨의사사(咨議都僉議司事)를 지낸 조인규(趙仁規)의 아들이며, 조선의 개국공신인 조준(趙浚)의 할아버지이다.
음서(蔭敍)로 관계에 진출하여 1308년(충선왕 즉위년)에 평리(評理)가 되고, 이어 동지밀직사사·지밀직사사 등을 거쳐 1311년 첨의평리(僉議評理)에 오르고, 여러 번 원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하였다.
충숙왕 때 찬성사가 되어 최고위의 재상반열에 서서 중요한 일을 맡았다. 또한, 원나라로부터 중의대부 고려왕부단사관(中議大夫高麗王府斷事官)의 직임을 받았는데, 이는 조인규가 지녔던 것을 물려받은 셈이며, 따라서 고려에서의 정치적 지위를 굳히는 데 큰 구실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심왕 왕고(瀋王 王暠)가 고려 왕위를 넘보는 일로 원나라에 불려가서 국왕인(國王印)을 빼앗기는 사태가 발생하였을 때, 충숙왕이 원나라의 명령에 의하여 정동행성(征東行省)의 권성사(權省事)가 되어 왕의 직무를 대행한 바 있다.
충숙왕과 심왕의 싸움이 결말을 보기 전인 1322년에 죽었지만, 동생 조연수(趙延壽)와 함께 심왕의 편을 들어 절개를 잃었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시호는 충숙(忠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