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헌, 한성부우윤, 강화유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32년 가자되어 병조참판을 지내고, 도승지가 되었을 때 그는 영조로부터 “노론과 소론의 당쟁은 실은 숙종이 죽을 무렵 신하가 군주를 선택한 데 있다(實由乎庚子 國恤之日 此頃者所謂 臣擇君者也).”고 한 수서(手書)를 받기도 하였다.
그 해에 김창집(金昌集)·이이명(李頤命) 등 노론대신의 신원(伸寃: 억울하게 입은 죄를 풀어줌)을 상소하여 관작을 복구하게 하였다. 이어 대사성·대사헌을 거쳐 예조참판에 전임하여 유생의 건복(巾服)을 청나라 제도에 따르도록 청하여 시행하게 하였고, 이 후 다시 대사헌·대사성을 거쳐 형조참판이 되어 판의금부사를 겸하였다.
이어 경기감사 재임 중 파직되었다. 1736년 서용되어 도승지·대사헌·한성부우윤을 지내고 강화유수가 되어 임지에서 죽었다. 많은 관직을 역임하였으나 성품이 당론에 치우쳐 공정하지 못하였다는 평이 많았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포암집(圃巖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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