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북제주 출생. 1919년 5월 3·1운동이 제주도에까지 파급되면서 도내 기독교인간에 호응할 것을 협의하던 중 서울에서 밀파된 독립희생회(獨立犧牲會) 연락원 김창규(金昌圭)·김창국(金昶國)·최용식(崔龍植)·최창언(崔昌彦) 등과 함께 이 회의 조직원과 회원 1인당 군자금 2원씩을 헌납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에 최용식의 집에서 임시정부헌장과 해외통신문 등을 등사하여 제주도 내에 배포하면서 4,500여 명으로부터 군자금 1만원을 모금, 임시정부에 송금하였다.
같은 해 7월 20일 이 사실이 발각되어 최용식·김창국·김창언·문창래(文昌來)·이도종(李道宗) 등 관련자 60여 명과 함께 일본경찰에 붙잡혔다. 그해 11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 옥사하였다.
1963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