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병조판서, 판돈녕부사,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25년(영조 1) 풀려나서 다음해 함경도관찰사로 부임하고, 북관군병(北關軍兵)에 조총을 복습하게 하였다. 1727년 정미환국으로 노론인 정호(鄭湖)·민진원(閔鎭遠) 등이 탄핵당하자 이를 변호하다 파직되었다.
1729년 다시 기용되어 한성부좌윤·대사헌·경기관찰사·이조참판을 역임하였고, 1731년 사은 겸 동지부사(謝恩兼冬至副使)로 청나라에 건너가 『명사조선열전(明史朝鮮列傳)』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듬해 가자되어 이조판서에 오르고 이어 형조판서·공조판서·우참찬을 역임하였으며, 1734년 한성부판윤·병조판서에 이르러 군관치사문제(軍官致死問題)로 파직되었다.
1736년 다시 기용되어 이조판서·수어사(守禦使)·병조판서로 판의금부사를 겸하였고, 각 판서를 두루 거쳐 판돈녕부사·한성부판윤을 끝으로 죽었다. 공신의 후예이며 노론의 중심인물이다. 시호는 경헌(景獻)이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경종실록(景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약파만록(藥坡漫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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