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서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에, 좌승지, 밀직부사, 동지밀직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시호
장민(蔣敏)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313년(충선왕 5)
본관
평양(平壤)
주요 관직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삼사사(三司事)
관련 사건
조비무고사건(趙妃誣告事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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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후기에, 좌승지, 밀직부사, 동지밀직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평양(平壤). 역인(譯人)으로 재상이 된 조인규(趙仁規)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충렬왕 초에 과거에 급제하여 직보문서(直寶文署)에 임용되었다.

그 뒤, 1297년(충렬왕 23) 우승지에 이르고, 이듬해 충선왕이 잠시 즉위한 동안 광정승지(光政承旨)·전객경(典客卿)이 되었으나, 같은 해 아버지 조인규가 조비(趙妃: 충선왕비) 무옥사건에 연루되어 원나라에 압송되었을 때 동생들과 함께 동행하여 8년간을 수종(隨從)하였다.

조인규가 방환(放還)되자 귀국하여 1306년 좌승지에 복직되고, 이듬해 밀직부사가 되어 성절사(聖節使)로 원나라에 다녀왔다. 1308년 동지밀직(同知密直)으로 천추사(千秋使)가 되어 원나라에 파견되었는데, 이 때 장녀를 원나라의 총상(寵相)이며 뒤에 안길왕(安吉王)에 봉해진 야아길니(也兒吉尼)와 혼인시켰다.

이듬해 귀국하면서 원나라로부터 회원대장군 고려국부원수(懷遠大將軍高麗國副元帥)의 직을 받았다. 귀국한 뒤 대사헌검교찬성사(大司憲檢校贊成事)에 제수되고 평양군(平壤君)에 봉해졌으며,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를 거쳐 삼사사(三司事)에 올랐다. 시호는 장민(蔣敏)이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조인규와 그의 가문」(민현구, 『진단학보』42·43, 1976·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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