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2월 말경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新韓村) 일대에서 곽병규(郭秉奎)가 기독교신자로 동지 오영선(吳永善)·이강(李剛) 등 20여명과 함께 교회를 설립한 뒤 이 연맹을 조직하였다.
회원은 150명이며 회장에 곽병규, 부회장에 오영선, 총무에 이강을 선임한 뒤 오영선 등 20명을 자문위원회 위원으로 뽑았다. 이들은 기독교 신자의 양심에 입각하여 독립투쟁을 신앙적 차원에서 전개해나가기로 하였다.
국내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3월 17일 대한국민의회에 가담, 임시정부 수립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대한국민의회 정부가 상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로 흡수되자 자연 해체, 흡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