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2월 5일 서울에서 50여명의 전문대학생과 일반청년이 모여 조직하였다. 목적은 조선노동운동의 효율성과 공산사회운동의 지속화를 위한 상호권익옹호와 신변안전도모에 있었다.
조선노동대회후원회(朝鮮勞動大會後援會)의 회원인 주병서(朱柄瑞)·송정화(宋正和) 등 20여명이 집행위원회를 열고 노동연구와 그 실천을 위하여 이 모임을 만들었다.
강연회를 천도교당에서 개최하고자 기도하였으나 일본경찰의 저지·탄압으로 제1회 강연회조차 개최하지 못하였고 그 뒤 1925년 조선공산당이 조직되자 그 산하단체로 흡수되었다. 그 이후의 노동활동은 분명하지 않으나 1928년까지 간간이 노동자대회와 권익옹호를 위하여 노력한 흔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