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농우연맹

  • 역사
  • 단체
  • 일제강점기
1920년대 수원고등농림학교(水原高等農林學校 : 지금의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전신) 학생들의 비밀결사.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현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1920년대 수원고등농림학교(水原高等農林學校 : 지금의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전신) 학생들의 비밀결사.

내용

수원고등농림학교 한국인 학생 김성원(金聲遠)·김찬도(金燦道) 등 10여 명이 1926년 전후에 건아단(健兒團)을 조직하고 동료학생 육동백(陸東白)·김익수(金益洙)·황봉선(黃鳳善)·김민찬(金玟贊)·남영희(南榮熙)·고재천(高在千)·권영선(權榮善)·우종휘(禹鍾徽)·김봉일(金奉日)·백세기(白世基) 등 20여 명을 권유, 규합하였다.

농민대중을 계몽하여 신사회를 건설하며 잘사는 이상적 농촌 실현을 목표로 삼은 이 단체는 1928년 가을에 계림농흥사(鷄林農興社)로 개칭하였다가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다시 조선개척사(朝鮮開拓社)로 위장, 개편하였다. 그러나 그 기본 조직체는 이 연맹이며, 연맹원들도 그러한 자격으로 활동하였다. 즉 건아단·계림농흥사·조선개척사는 동일 단체의 변형으로 회원 50명 전원이 이 연맹에 가입, 활동하였다. 이들은 야학을 설치, 운영하였으며, 단군기원을 사용하여 주체성을 강력히 나타냈다.

계몽·교양과 독립운동을 목표로 한 연맹은 원래 수원고등농림학교 기숙사의 ‘조선인학생간담회’에서부터 조직적으로 발전한 비밀결사였다. 건아단 출신의 주동자 김성원이 김해농업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독립활동을 전개하던 중 일본경찰에 붙잡혀 조직이 발각되면서 1928년 10월 초에 자연 해체되었다.

참고문헌

  • - 『한민족광부투쟁사』(이현희, 정음문화사, 1990)

  • - 『한국근대민족주의운동사연구』(역사학회, 일조각, 1987)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