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고등농림학교 한국인 학생 김성원(金聲遠)·김찬도(金燦道) 등 10여 명이 1926년 전후에 건아단(健兒團)을 조직하고 동료학생 육동백(陸東白)·김익수(金益洙)·황봉선(黃鳳善)·김민찬(金玟贊)·남영희(南榮熙)·고재천(高在千)·권영선(權榮善)·우종휘(禹鍾徽)·김봉일(金奉日)·백세기(白世基) 등 20여 명을 권유, 규합하였다.
농민대중을 계몽하여 신사회를 건설하며 잘사는 이상적 농촌 실현을 목표로 삼은 이 단체는 1928년 가을에 계림농흥사(鷄林農興社)로 개칭하였다가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다시 조선개척사(朝鮮開拓社)로 위장, 개편하였다. 그러나 그 기본 조직체는 이 연맹이며, 연맹원들도 그러한 자격으로 활동하였다. 즉 건아단·계림농흥사·조선개척사는 동일 단체의 변형으로 회원 50명 전원이 이 연맹에 가입, 활동하였다. 이들은 야학을 설치, 운영하였으며, 단군기원을 사용하여 주체성을 강력히 나타냈다.
계몽·교양과 독립운동을 목표로 한 연맹은 원래 수원고등농림학교 기숙사의 ‘조선인학생간담회’에서부터 조직적으로 발전한 비밀결사였다. 건아단 출신의 주동자 김성원이 김해농업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독립활동을 전개하던 중 일본경찰에 붙잡혀 조직이 발각되면서 1928년 10월 초에 자연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