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문명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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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문명사
조선문명사
근대사
문헌
학자 안확이 한국사에 관하여 저술한 학술서.
정의
학자 안확이 한국사에 관하여 저술한 학술서.
개설

회동서관(匯東書館)에서 간행하였다. 조선정치사라고도 한다.

저자는 당초 조선문명사를 『조선민족사고』·『조선미술사개론』·『조선학예사』·『조선문학사』·『조선정치사』·『조선경제사』·『조선외교사』·『조선육해군사』 등 8책으로 계획하였다.

그러나 『조선문학사』와 『조선정치사』 만 간행되었을 뿐이다. 또 『조선문학사』의 간행에서는 정작 조선문명사의 시리즈 이름을 붙이지 않아 『조선정치사』가 조선문명사를 대표하게 되었다. 간행 당시의 정확한 내재명은 ‘조선문명사(5), 일명 조선정치사’였다.

내용

이 책은 1900년대에 수용되기 시작한 사회진화론·문명진보론의 영향을 받아 민족사를 시종 개선진화의 관점에서 발전적으로 본 것이 특징이다. 이 책이 정치사적 관점에서 주목한 민족사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자치제 발달이다. 이것은 1900년대의 공화제 실현운동과 맥락을 같이하는 역사인식의 소산이었다.

루소·몽테스키외 등의 문명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1900년대의 공화제 실현운동은 민주주의 실현의 기본 요건이 자유·자주·자치라고 이해하였다. 이에 우리 민족사에서 확인되는 자치제의 역사를 특별히 주목하는 역사인식이 대두하였다.

민족사의 이러한 특별한 면모에 대한 인식은 1910년의 국권 상실로 크게 쇠퇴했으나 이 책에서는 굳은 신념으로 남아 자치제 발달의 면모를 중심으로 한 민족사의 발전이 조명되었다.

자치제 발달은 단순한 제도의 발달 측면으로 주목된 것이 아니라, 다수 인민이 역사의 주체가 되어 역사를 이끈 자취로서 자치제의 시대적 성쇠가 주목되었다. 그러나 이런 면모는 어디까지나 개설서로서의 다른 부문과의 균형 속에서 조명되고 강조되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정치사가 바로 문명의 요체로서 생활사의 가장 중요한 것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한 정치사를 새로이 건설하는 데 있어서는 ‘시대구별’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하고 다음과 같은 시대구분을 가하였다.

즉, 상고 소분립정치시대(단군건국부터 열국, 즉 삼한 말까지 2, 200년간), 중고 대분립정치시대(삼국 초부터 남북조까지 1,000년간), 근고 귀족정치시대(고려조 500년간), 근세 군주독재정치시대(조선 500년간)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구체적인 시대구분은 현재까지의 조사로는 가장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조선시대의 역사를 당시의 지식인들의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긍정으로 보아 민족사에서 가장 문명이 발달한 시대라고 본 점이다. 이 시대를 군주독재정치시대라고 하고 또 새로운 민주공화제의 준비기라는 의미를 설정하였다.

조선의 군주정치는 제도적으로는 독재이나 실질적으로는 관료제와 어우러져 전횡이 일어날 수 없었다고 하였다. 특히 이 시대의 정파의 대립을 당쟁의 차원으로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정당 정치의 발달로 이해하고자 하였다.

즉, 중앙에서의 정파의 활동은 각지의 서원·유회(儒會)의 발달이 된 것으로 정치는 본래 서로 토론하고 비판하는 가운데 옳은 것에로 나아가는 것이라는 인식에서 정파의 대립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저자는 조선왕조가 당쟁 때문에 망했다는 인식이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 고조되어가는 것을 비판 하고, 오히려 세도정치의 대두와 함께 정파의 원기가 꺾이면서 나라가 쇠퇴하고 말았던 것이라고 갈파하였다.

그는 조선시대 유교정치의 토대가 된 유회, 그리고 지역사회의 자치체인 향회, 최하부 촌락사회의 촌회 등의 발달은 조선시대의 역사가 민족사에서 가장 발달된 것의 실체라고 파악하였다. 이것들의 상호관계를 근대적으로 잘 발달시켰더라면 공화제도 실현시킬 수 있었고 나라도 잃지 않았을 것이라는 인식이 이 책의 바탕에 깔려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을 간행할 당시 일제의 문화정치에 대한 타협안으로 일부에서 자치론이 제기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타협론과는 전혀 무관하며, 저자가 이 때 자치제 발달의 역사를 주목하는 민족사를 쓴 것은 어디까지나 3·1운동의 경험에 따른 것이었다.

당시 마산 지방의 3·1운동에서 중요한 구실을 한 저자는 이 운동에서 ‘다수 인민’이 민족사의 주역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그리고 1900년대 이래의 자신의 민족사에 대한 신념을 개설서의 저술을 통해 체계화시키게 되었던 것이다.

참고문헌

「안확(安廓)」(이태진, 『한국사시민강좌(韓國史市民講座)』 5, 1989)
「안확(安廓)의 생애(生涯)와 국학세계(國學世界)」(이태진, 『역사(歷史)와 인간(人間)의 대응(對應)』, 한울, 1984)
「한국근대역사학(韓國近代歷史學)과 조선시대사(朝鮮時代史) 이해-안확의 조선문명사(朝鮮文明史)-」(한영우, 『인문과학(人文科學)의 새로운 방향』,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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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이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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