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개항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생존한 학자 정인보가 단군으로부터 삼국시대에 이르는 우리나라 고대사를 특정한 주제를 설정해 통사 형식으로 저술한 역사서. 학술서.
편찬/발간 경의
내용
귀국 후에는 연희전문학교에서 강의하였다. 『성호사설』과 『여유당전서』의 교열·간행 작업에도 참여해 일제강점기에 실학과 조선학의 배양에 헌신하였다.
그러다가 1930년대 일제의 식민주의 사관에 의해 한국사, 특히 고대사가 왜곡되어가는 학문적 풍토를 좌시할 수 없어 한국사 연구에 착수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그 무렵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던 신채호의 『조선사연구초(朝鮮史硏究草)』가 준 자극을 간과할 수 없다.
그의 말을 빌리면, “이것을 보고 일본 학자의 조선사에 대한 고증이 저의 총독정책과 얼마나 긴밀한 관계가 있는 것을 더욱 깊이 알아 ‘언제든지 깡그리 부셔버리리라.’하였다.
그 뒤 신채호의 『조선사연구초』가 들어와 그 안식(眼識)을 탄복하는 일면에 …….”라고 하였다. 뒤늦게나마 국사 연구에 착수하게 된 동기가 식민주의 사학의 타도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얼’ 중심의 정신사적인 역사관을 강조하고 있다. 그가 주장하는 ‘얼’은 민족정신을 말한다. ‘얼’의 반영으로 나타나는 것이 곧 역사요, 역사의 대척주(大脊柱)를 찾는 것은 역사의 밑바닥에서 천추만대를 일관하는 ‘얼’을 찾는 작업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역사학이란 역사의 대척주인 ‘얼’을 추색(推索)하는 학문으로서, 역사가는 개개의 역사적 사실을 탐구해 궁극적으로는 역사의 대척주인 ‘얼’의 큰 줄기를 찾아가야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얼’을 빼놓은 당시의 역사학은 그것이 일제관학자의 것이든 줏대 없이 총독부의 식민지 문화정책에 동조하는 학자들의 것이든, 쓸데없는 것이요, 오히려 해악을 끼치는 것으로 보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당시 문헌고증학을 내세우며 한국 고대사를 난도질하는 식민주의 사학에 정면으로 투쟁하고 있다. 우선 단군을 시조로 인식하였다.
단군의 향수(享壽)에 관한 기록은 단군조선의 전세(傳世)로 파악했으며, 단군의 연원 문제는 단군과 천(天)을 연결시키려는 의식의 반영으로 보았다. 단군의 발상지를 백두산으로, 국도는 송화강(松花江) 유역으로 인식하였다.
또한, 신채호의 사학을 계승·보완·심화하였다. 즉 신채호의 ‘부여·고구려 중심의 고대사 체계’와 ‘백제의 요서경략설(遼西經略說)’ 및 ‘한사군의 반도 외 존재설’ 등이 그것이다.
신채호의 백제의 요서경략설을 ‘백제의 해상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정리하고 있다. 특히 그의 ‘한사군의 반도 외 존재’를 입증하는 논리는 명쾌하다.
당시 일제관학자들은 평양과 그 부근에서 ‘낙랑태수인(樂浪太守印)’ 등의 명문이 든 봉니(封泥)의 조각들을 발견했다 하여 평양 근처가 바로 옛 낙랑지역임을 증명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봉니가 평양 주변에서 발굴되었다는 것은 곧 평양이 낙랑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봉니 조각은 비밀문서를 받는 쪽에서 남겨지는 것인데, 평양 지역에서 이러한 봉니가 발견되었다는 것은 평양이 곧 낙랑의 문서를 받은 곳임을 의미하는 것이지, 평양이 문서를 보낸 주체가 되는 낙랑으로는 결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위당정인보(爲堂鄭寅普)의 고대사인식(古代史認識)」(진영일, 『공주교육대학논총(公州敎育大學論叢)』 22-1, 1986)
- 「우리나라 근대역사학(近代歷史學)의 발달(發達)」(김용섭, 『한국(韓國)의 역사인식(歷史認識)』 하, 창작과 비평사, 1976)
- 「위당정인보(爲堂鄭寅普)」(홍이섭, 『한국사(韓國史)의 방법(方法)』, 탐구당,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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