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대 후반에 저술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은 1931년 당시 조선일보 사장인 안재홍(安在鴻)의 주선에 의해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다.
신채호는 1910년 우리나라를 탈출한 뒤 상해(上海)·북경(北京)·만주 등지를 전전하면서 독립운동과 역사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2회 이상 고구려·발해의 유적을 답사하였다.
특히 1914년에는 대종교(大倧敎) 제3대 종사(宗師) 윤세복(尹世復)의 초청으로 서간도(西間島)환인현(桓仁縣)에 가서 1년간 체류하며 고적 답사, 동창학교(東昌學校)에서의 국사교수 및 『조선사(朝鮮史)』 집필에 몰두하였다.
이때 집필한 『조선사』는 동창학교의 교재로 사용되었다. 아마 이것이 뒷날 『조선상고문화사』로 개제(改題)되었거나, 그 내용이 흡수된 것으로 추정이 될 만큼 이 책에는 대종교적인 분위기가 짙게 나타나 있다.
그러다가 1920년대에 들어서 대종교와 인연을 끊고 근대역사학 연구방법을 수용하면서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가 집필되었던 것이다.
『조선상고문화사』는 근대사학에 상당히 접근해 있어서 『조선상고사』의 집필 연대와 멀리 떨어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로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유증(類證)·호증(互證)·추증(追證)·반증(反證)·변증(辨證)의 연구방법론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기본사료 인용 면에서 『조선상고사』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용된 참고서 또한 근대사학자들의 것이 보일 뿐 아니라 이해하고 있는 사회사상도 『조선상고사』의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문헌은 신채호의 역사연구 단계로 볼 때 『독사신론(讀史新論)』에서 『조선상고사』로 이행하는 중간 단계에 해당한다. 그 내용상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독사신론』에서는 단군·부여·고구려로 계승되는 역사인식체계와 그 역사무대로서 만주를 중요시했지만, 이 책에서는 만주와 한반도는 물론 부여족의 식민지로서 중국 대륙의 일부까지를 우리의 역사로 수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사군(漢四郡)의 반도 외 존재설(半島外存在說)과 전후삼한설(前後三韓說) 등이 새롭게 주장되었다.
둘째, 대종교적 분위기에 젖어든 것을 부인할 수 없지만 고적 답사를 통한 현장 확인, 문헌 수집, 유물 발굴 및 실증적 방법의 적용 등의 노력을 엿볼 수 있으며, 평이한 국한문(國漢文) 문체의 역사서술을 느낄 수 있다.
셋째, 한국의 상고문화에 대한 국수주의적이고 자존적(自尊的)인 인식이 뚜렷하다. 단군왕조를 강조한 것은 대종교의 포교와 관련이 깊겠지만, 그 밖에도 우리의 상고문화가 중국을 능가하는 우수한 문화임을 강조하는 사례들이 기술되어 있다.
『조선상고문화사』는 중국에 대한 문화사대(文化事大)를 극복하고 일제의 식민지 상황을 철폐하려는 자주적인 역사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 서술된 우리나라의 상고문화가 과연 한민족사에 수렴될 수 있는가는 의문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