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복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장령, 헌납, 집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사극(士克)
  • 시호충간(忠簡)
  • 퇴수재(退修齋)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신임사화
  • 본관풍양(豊壤)
  • 사망 연도1723년(경종 3)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장령|헌납|집의
  • 출생 연도1681년(숙종 7)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오갑균 (청주교육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장령, 헌납, 집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사극(士克), 호는 퇴수재(退修齋). 조박(趙璞)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현소(趙見素)이고, 아버지는 감역 조시채(趙始采)이며, 어머니는 최득일(崔得一)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02년(숙종 28)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지평·정언을 지냈다. 1716년 지평으로 있으면서 윤선거(尹宣擧)의 선정(先正) 칭호를 금할 것을 청하였고, 이후 장령·헌납을 지내고, 1721년(경종 1) 집의로서 양역(良役)의 폐단을 논하는 소를 올렸다.

같은 해 헌납이 되어 윤선거의 유집(遺集)에 잘못된 문자가 있으니 훼판할 것을 청하였다. 그 해에 다시 집의가 되어 경종에게 세제(世弟: 영조)의 대리청정(代理聽政)을 요구하는 소를 올려 노론의 지지를 받아 그 결정을 보았으나, 소론측이 무군부도(無君不道)의 죄로 몰아 의금부에서 배후를 캐는 국문을 받고 다음해 정의(旌義)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

이 대리청정문제는 신임사화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 1723년 다시 잡혀 올라와 옥중에서 음독 자살하였다. 신임사화 때 삼학사(三學士)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영조 즉위 후 이조판서로 추증되고,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참고문헌

  • - 『경종실록(景宗實錄)』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