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양(漢陽). 용진현(龍津縣)에 살았다. 항몽전쟁 말기 부원반역자로 쌍성총관(雙城摠管)이 되었던 조휘(趙暉)의 증손이다.
조휘의 투몽(投蒙) 이후 쌍성총관부가 존속된 1세기 동안 조휘와 그 자손이 총관직을 세습하였던 바, 1356년(공민왕 5) 왕이 원나라의 쇠미를 틈타 쌍성의 수복을 꾀할 당시 쌍성총관으로 있었다.
동북면병마사 유인우(柳仁雨) 등이 쌍성을 공략하자, 고려군과의 내응을 우려하여 인망이 있던 숙부 조돈(趙暾)을 연금시키는 한편, 천호(千戶) 탁도경(卓都卿)과 함께 저항을 꾀하였다.
그러나 조돈이 탈출하여 고려군에 협력하고 쌍성인들이 고려에 귀순하자 일이 기울어진 것을 알고 여진지역으로 도주하였다.
정부가 돈을 보내어 회유하였지만 끝내 듣지 않고 1362년 원나라의 반적(叛賊) 나하추(納哈出)를 끌어들여 고려의 동북변지역을 침구하였다가 홍원(洪原)에서 이성계(李成桂)에 의하여 격파당하고, 같은 해 여진의 다루가치(達魯花赤)에 의하여 살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