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도승지, 개성유수, 한성부우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17년 전라우도어사로 임명되고, 이듬해 동래부사를 거쳐 1719년 승지가 되었고, 그 해에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720년 경종 즉위 후 충청감사를 지내고 승지가 되었으나 신임사화 때 소론에 배척당하여 파직되고, 선산에 유배되었다가 뒤에 영춘(永春)에 이배되었다.
1725년 노론의 집권으로 풀려나 공조참의·참찬관·승지·경상도감사·도승지를 역임하였다. 1727년 개성유수로 있을 때 정미환국이 일어나자, 네 번이나 소를 올려 전일의 죄인들을 이제 등용시켜서는 아니 되며 그들과 함께 정치를 할 수 없다고 극언하다 파직당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듬해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한성부우윤이 되었다가 난이 평정된 뒤 사직하였다. 서예에도 뛰어나 필원(筆苑)에 이름이 끼었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경종실록(景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지수재집(知守齋集)』
- 『전고대방(典故大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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