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1960년대에 주로 활동하였으며 초기에는 스승인 최원식 밑에서 조계사 및 봉은사 법당(그 뒤 다시 지어짐) 등을 같이 지으면서 일을 배웠다.
최원식은 덕수궁 중화전(中和殿) 중건(1906)과 1917년에 화재를 입은 창덕궁 대조전(大造殿)을 비롯한 내전(內殿) 일곽을 복건(1920)할 때 참여한 뛰어난 전통궁궐목수였다. 그 뒤 조원재는 동양건축사(東洋建築社)와 한도실업을 설립, 자영하였고, 1956년 강진 무위사 수리공사시에는 지명경쟁입찰을 통하여 공사를 맡아하였다.
이 공사는 광복 후 우리나라 국보급 고건축에 대하여 처음으로 실시된 보존공사였다. 그의 대표적 일로서는 남대문 중수공사를 들 수 있다. 전화(戰火)에 의한 피해와 주변에 부설(敷設)한 전차궤도의 진동으로 퇴락해가는 남대문을 수리하기 위하여 1961년 7월 중수공사가 실시되었다.
이 때 그는 목조건축물의 해체공사를 도급, 운영하였을 뿐만 아니라, 도편수(都片手 : 목수의 우두머리)로서 중수를 위한 치목공사(治木工事)를 주관하였다.
당시 해체실측제도 및 복원도(復元圖) 작성은 임천(林泉)이 하였고, 부편수(副片手)로 있던 이광규(李光奎)는 조원재의 수제자이다. 이밖에도 그의 작품으로는 남한산성 팔각정, 오대산 상원사 종루, 파고다공원 삼일문 등이 있다.
1967년 진주성 중건 시에는 촉석문을 제외한 목조건물의 재건공사를 담당하였다. 그는 전통궁궐목수의 기술을 전수받은 뛰어난 목수로서, 임배근과 함께 일제시대 이후 전통건축 계승에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