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임천(林川). 자는 성지(誠之), 호는 석곡(石谷). 조희진(趙希進)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시형(趙時馨)이고, 아버지는 부사 조현기(趙顯期)이며, 어머니는 김좌명(金佐明)의 딸이다.
1710년(숙종 36) 사마시에 합격, 헌릉참봉(獻陵參奉)·별검(別檢)·익산군수를 지내고, 1727년(영조 3)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예조정랑·지평을 지냈다. 그 해 정미환국으로 소론이 집권하자 파직되었다.
다음해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세자시강원필선으로 기용되었고, 이어 성균관사성을 지내고 순천부사로 임명되었으나 사퇴하였다. 1728년 다시 지평이 되어 소론의 영수인 영의정 이광좌(李光佐)를 논척하다가 김제에 유배되었다. 이듬해 풀려나와 고향에서 학문과 시부(詩賦)로 여생을 보냈다.